통일부 차관을 지낸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이 “통일을 지우려는 정부 아래에서는 소신을 지킬 수 없다”며 4일 전격 사의를 밝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통일정책 연구 방향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 셈이다.
김 원장은 이날 통화에서 “통일을 지향하지 않고 오히려 정책에서 ‘통일’을 지우려는 정부에서 계속 자리를 지키는 것이 불편했다”며 “사퇴 압박은 없었지만 더 이상 통일연구원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입장에 맞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월급만 받는 건 따뜻할 수 있겠지만, 통일에 대한 내 신념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김 원장은 2023년 7월 임명돼 임기 만료를 8개월 남겨둔 상황이었다. 후임 인선 절차가 곧 착수될 전망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통일부 차관을 지낸 그는 ‘6·15 남북공동선언’ 초안 작성자이자 대표적 통일실무통으로 꼽힌다. 과거 정동영 장관이 부처 명칭에서 ‘통일’을 빼려는 시도를 하자 “위헌적이며 반통일적”이라고 공개 비판한 바 있다. 또 공개 석상에서 “통일을 포기하는 것은 강대국이 되는 길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소신을 반복해 왔다.
행정고시 수석 합격 후 기피부서였던 통일부를 자원한 그는 2013년 퇴임사에서 “소년 시절부터 부강한 조국의 답은 통일에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당시 “앞으로도 국가로부터 받은 녹봉이 사적 이익으로 쓰이지 않도록 하겠다”며 북한의 카운터파트들에게 “통일의 그날 함께 손잡자”는 메시지를 남겼다.
김천식의 사퇴는 현 정부의 통일정책이 ‘통일지향’에서 ‘남북관리’로 바뀌고 있다는 학계의 지적과도 맞물린다. 전문가들은 “국책연구기관장 사퇴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며 “정부가 통일 의제를 안보·대북억제 중심으로 좁히는 흐름 속에서 통일담론이 사실상 실종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