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이 3일(현지시간) 향년 84세로 별세했다. 유족에 따르면 체니는 미국 버지니아 자택에서 폐렴과 심혈관 질환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
체니는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조지 W 부시 대통령 아래서 제46대 부통령을 지내며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과 이라크 침공을 설계한 핵심 인물로 평가된다. AP통신은 그를 “현대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강력하고 논쟁적인 부통령”으로 묘사했다.
1941년 네브래스카에서 태어난 체니는 와이오밍대에서 정치학 학·석사를 마치고 닉슨, 포드 행정부에서 경력을 쌓았다. 포드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뒤 와이오밍 연방하원의원, 조지 H W 부시 행정부의 국방장관을 역임하며 워싱턴 정가의 실세로 부상했다.
2000년 대선 당시 부시의 러닝메이트 검증위원으로 참여했다가 본인이 직접 부통령 후보로 낙점됐다. 정치 경험이 적었던 부시 대통령을 대신해 정책 전반을 주도하며 ‘그림자 대통령’, ‘진짜 대통령’으로 불렸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백악관 지하벙커에서 대응을 지휘한 체니는 납치된 민항기 격추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선제공격·정권교체를 골자로 한 강경 대테러 전략을 밀어붙였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했다고 주장해 2003년 이라크 전쟁의 명분을 제공했으나, 이후 정보가 허위로 드러나면서 비판의 중심에 섰다. 그럼에도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정보감청, 고문, 관타나모 수용소 운영 등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체니는 “국가 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정책을 끝까지 옹호했다.
공화당 내 강경보수의 상징이었던 그는 말년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미국 민주주의의 최대 위협”으로 비판하며 결별했다. 2024년 대선에선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를 공개 지지했다. 그의 딸 리즈 체니 전 하원의원도 부친과 함께 트럼프 반대 진영에 섰다.
평생 심장질환에 시달린 체니는 다섯 차례 심장마비를 겪고 2012년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는 생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후의 삶은 선물이었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린 체니, 두 딸 리즈와 메리, 그리고 7명의 손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