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국정의 핵심 과제로 삼았다. 미국은 당시에도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으로, 한국 경제의 외연 확장을 위해 반드시 뛰어들어야 할 무대였다. 노 대통령은 ‘선진통상국가’를 21세기 대한민국의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며 FTA 추진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내부의 저항은 거셌다. 대표적인 진보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을 지지했던 이른바 ‘집토끼’ 진보 진영이 강력히 반발했다. 한미 FTA는 대자본에 유리하고 농업 등 취약 산업을 희생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당내 반대도 극심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지지율이 무너져도, 국가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며 정면 돌파를 택했다. 당시 유행한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이라는 조롱이 상징하듯, 그는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얻은 것도 컸다.
2007년 서명된 한미 FTA는 2012년 발효된 이후 지금까지 연평균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무역흑자를 창출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화장품, 의료기기 등 전략 품목의 수출이 급성장하며 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오늘날 그 자유무역의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반도체지원법 등을 잇달아 시행하며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교역국에 일방적인 요구를 강요하고 있다.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조항은 FTA 정신과 정면 충돌한다. FTA라는 틀이 사실상 무력화된 상황이다.
이재명 정부는 최근 미국과의 통상협상에서 어느 정도 ‘선방’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결정적인 반전은 없었다. 한국산 전기차의 보조금 차별, 반도체 장비의 대중 수출 규제 등에서 여전히 한국은 불리한 처지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지층의 이반을 감수하고 이뤄낸 ‘성과’가 이렇게 무너지는 현실은 뼈아프다.
20년 전 선각자의 선택이 조롱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 선택이 얼마나 앞서 있었는지를 모두가 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혜안과 결단을 이어갈 오늘의 정치가 있느냐다. 자유무역이 약속이 아닌 무기처럼 휘둘리는 시대에, 다시금 노무현의 용기와 전략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