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일은 김일성 북한 주석이 사망한 지 31년이 되는 날이다. 1994년 7월 8일 김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같은 달 25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좌절시켰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의 발단은 북한 핵 문제였다. 1993년 3월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며 핵무기 개발 움직임을 노골화했다. 미국 내 대북 강경파들은 북한 핵 시설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주장했고, 한반도에는 긴장이 고조됐다.
긴박한 상황에서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는 전 대통령인 지미 카터를 특사로 파견했다. 1994년 6월 15일 평양을 방문한 카터 전 대통령은 김 주석과 만나 북한의 핵 개발 동결 가능성과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끌어냈다.
남북은 즉각 회담 준비에 들어갔다. 1994년 7월 1일 판문점에서 열린 실무 대표 접촉에서는 김영삼(YS)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최소 두 차례 단독 회담을 갖는 방안까지 논의됐다. 그러나 회담 준비 과정에서 북한은 남측의 현장 생중계 요청을 반대하며 갈등이 표면화되기도 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던 가운데, 7월 8일 새벽 김일성 주석이 심근경색으로 급사하면서 회담은 무산됐다. 북한 당국은 사망 다음날인 9일 정오에야 김 주석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고, 남측 시민들은 서울역 등지에서 호외를 통해 이를 접하며 큰 충격에 빠졌다.
김일성 사망 이후 암살설과 음모론 등 온갖 억측이 난무했으나, 현재까지 공식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은 한국전쟁을 일으킨 전범이지만, 남북 관계에 있어서는 ‘나라 대 나라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의 손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현재 남북을 ‘교전 중인 두 국가’로 규정하며 한반도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