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 관련 전력이 정치권 논란으로 부상했다
1980년대 미문화원 점거 사건은 모두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미국의 책임론과 사과를 요구하는 성격이었다. 1980년 12월 광주 미문화원 방화, 1982년 3월 부산 미문화원 방화, 그리고 김 후보자가 관련된 19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 농성이 대표적이다.
사건 배경에는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 진압 과정에서 미국의 묵인이 있었다는 의혹이 자리 잡고 있다. 당시 현지에 있던 아놀드 피터슨 선교사의 증언을 담은 <5·18 광주사태>에 따르면 미군이 광주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뚜렷하다. 실제 미군은 한국군 20사단의 한미연합사 탈퇴를 승인하고, 항공모함 코럴시호를 한국 근해에 배치하는 등 광주 진압 작전을 간접 지원했다.
1985년 5월 23일 서울 미문화원을 점거한 학생들의 요구는 명확했다.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 겸 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 의장이던 김민석 후보자는 사건 당시 문화원 외부에서 응원 집회를 주도했다. 당시 학생들은 “광주 사태 책임자 공개, 미국의 공식 사죄, 신민당의 광주 진상조사 촉구” 등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행동이 반미가 아니라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에 있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자는 이후 1992년 <역사비평> 기고문에서 “당시 학생운동은 5·18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미국의 책임을 물었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당시 점거 학생들도 언론에 “우리의 진입은 반미가 아니라 5·18 해결 목적임을 명확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