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NL=임종석 우상호 이인영… PD=조국 송영길 심상정
한국 민주화운동 역사에서 1980년대 중반 이후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운동권 내부에서의 이념 분화였다. 특히 NL(민족해방, National Liberation)과 PD(민중민주, People’s Democracy) 두 계열의 형성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흐름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였다.
NL과 PD는 기본적으로 반독재, 민주화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나, 실천적 접근과 이념적 지향점에서는 큰 차이를 보였다.
NL 계열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미군 철수와 통일운동을 중심으로 반제국주의 노선을 강조했다. 특히, 한반도 문제를 민족 내부의 주체적 해결을 강조하는 ‘자주’와 ‘통일’에 초점을 맞추면서 광범위한 학생운동과 대중운동을 조직화했다.
반면 PD 계열은 사회주의 이론에 근거한 계급투쟁과 노동운동에 무게를 두고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개혁을 강조했다. PD는 노동자, 농민 등 계급 주체성을 강조하고,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들 두 진영의 경쟁은 1980년대 후반 이후 대학가와 노동현장, 시민사회 전반에 걸쳐 논쟁과 갈등을 낳았다. 특히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정치적 민주화가 일정 부분 달성되면서 이념적 갈등은 더욱 뚜렷하게 표출됐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NL은 통일운동과 진보적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정치세력화에 성공했고, PD는 진보정당과 노동조합 운동의 중심이 되며 한국 사회의 진보운동과 정치지형을 구성하는 주요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NL? PD? 80년대 학생운동 이념갈등 총정리
<서울의 봄>은 본래 80년대 활발하게 전개된 학생운동을 일컫는다. 민주화의 주인공은 시민이었고, 특히 대학생들은 가장 격렬하게 투쟁했다.
이 시기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현재 ‘586세대’로 묶이며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주요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진보정당은 학생운동에서 시작된 논의를 바탕으로 정당의 이념과 목표를 설정했다. 즉, 40년간 이어진 학생운동의 논쟁은 현재의 진보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80년 5월 17일 신군부의 쿠데타와 광주학살은 학생운동 진영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민주화 이상의 체제 변화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촉발된 것이다. 이후 학생운동 진영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구조를 파악하는 ‘사회구성체 논쟁’을 시작했다.
사회구성체 논쟁 주요 시기 및 내용
준비기(1980~1983)
- 서울역 회군과 무림-학림 논쟁: 운동권 내부에서 시위를 계속할지 중단할지 갈등했다.
1단계(1984~1985)
- CNP 논쟁: CDR(시민민주혁명), NDR(민족민주혁명), PDR(민중민주혁명)로 나뉘어 한국 사회의 핵심 모순을 논쟁했다. 결국 NDR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2단계(1986~1989)
- NL-CA 논쟁: NDR 내부에서 민족 문제를 우선시한 NL(민족해방)과 계급 문제를 강조한 CA(제헌의회)가 대립했다. 결국 NL이 주도권을 잡았다.
3단계(1989년 이후)
- NL-PD 논쟁: CA가 쇠퇴한 이후 새로운 PD(민중민주) 세력이 부상하면서 NL과 PD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NL은 민족주의적, PD는 사회주의적 노동운동을 강조했다.
NL과 PD의 핵심 차이
- NL: 미국의 제국주의적 영향력을 핵심 문제로 보고 민족해방과 통일운동을 우선시했다. 광범위한 대중적 연대를 중시했다.
- PD: 한국 사회의 근본 문제는 자본주의로부터 발생한 계급 문제라 규정하고, 노동운동과 계급투쟁에 집중했다. 북한에 비판적이었고, 사회주의 이념을 중심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