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일제의 심장을 강타했다. 그러나 그의 결단 뒤에는 ‘월진회(月進會)’라는 이름의 청년 결사체가 있었다. 이들은 조국의 자주와 민족의 존엄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목숨을 던졌다.
월진회는 1930년대 상하이에서 결성된 조선 청년들의 비밀 결사다. 윤봉길은 이 월진회의 일원으로, 김구와의 만남을 통해 “죽음을 각오한 사람만이 나라를 살릴 수 있다”는 결심을 다졌다. 의거의 계획과 준비는 월진회가 주도했으며, 윤봉길의 유서에서도 동지들에 대한 신뢰가 드러난다.
월진회는 비공식적인 조직으로, 상하이, 만주, 한반도를 오가며 정보를 공유하고 독립운동의 실천적 역할을 자임했다. 이들의 존재는 역사 기록에서 쉽게 사라질 수 있었지만, 윤봉길이라는 불꽃을 지핀 조용한 성냥이었다.
최근 학계에서는 윤봉길과 월진회의 관계를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서울대, 성균관대, 서강대 등에서는 월진회를 주제로 한 논문이 발표되고 있으며, 독립기념관은 관련 자료를 수집 중이다. 또한, 충남 예산군과 시민단체들은 월진회 구성원의 후손을 찾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월진회의 의기는 오늘날 청년 세대에게도 시사점을 남긴다. 이름 없이 싸우고, 좌절 속에서도 희망을 꺼내어 ‘월(月)처럼’ 앞으로 나아간 정신은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이나 민주주의 실천에서도 그 맥을 잇는다.
윤봉길의 의거는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그 시작에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그의 곁을 지킨 월진회가 있었다. 역사는 그들의 이름을 뒤늦게 부르지만, 우리는 그 불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월진회, 윤봉길 정신을 계승하는 현대의 실천
충남 예산에 위치한 사단법인 매헌윤봉길월진회는 윤봉길 의사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윤봉길의 생애를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풀어내어 어린 학생들이 쉽고 재미있게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
또한, 월진회는 ‘윤봉길 평화축제’, ‘매헌학교’, ‘생생문화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윤봉길 의사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있다. 특히, ‘윤봉”길”따라 동네 한바퀴’와 같은 체험 프로그램은 지역 주민들과 방문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이러한 활동을 통해 월진회는 윤봉길 의사의 숭고한 정신을 현대 사회에 맞게 계승하며, 미래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