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철 서강대 교수는 2024년 10월 10일 서울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통일뉴스 월례강좌에서 “북한의 헌법 개정이 의미하는 바와 함께 두 개의 국가론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이번 헌법 개정에서 ‘영토 조항’에 대한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를 북한이 여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영토 문제는 그 나라의 일방적인 선언으로 해결될 수 없다. 주변국과 국제사회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북한도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이번 헌법 개정에서 영토 관련 조항이 논의되지 않은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서 “NLL(북방한계선) 문제나 서해상의 국경 설정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북한이 국경을 공식화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두 개의 민족? 해외동포 정책과의 충돌 우려, 총련반발
정 교수는 특히 북한이 ‘두 개의 국가론’을 주장하면서도 ‘두 개의 민족’이라는 개념까지 공식화하지 않은 이유에 주목했다. 그는 “북한이 두 국가를 선언했지만 이를 두 민족으로 간주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만약 두 민족론을 공식화하면 일본에 있는 총련 동포들과 민단 동포들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복잡해진다”고 지적했다.
2022년 2월에 북한이 제정한 「해외동포권익옹호법」은 북한이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두 민족론을 주장할 경우, 해외동포 중 특히 일본의 총련과 민단 동포들을 다른 민족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이 과연 두 민족으로 보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남정책 변화의 함의와 국제적 반응
북한의 헌법 개정에서 두 개의 국가론이 명시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정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점을 보면, 북한이 대외적으로 두 국가론을 헌법에 포함시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대신 김정은 국방종합대학 창립 6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해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로 규정한 발언을 한 점에 주목하면서, 이 발언이 공식 법적 선언이 되지 못한 이유를 “북한 내부의 정치적 상황과 국제적 반응을 고려한 결과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북한의 입장을 지적하면서, 현재 남북관계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정전협정은 전투를 중단한 것이지 전쟁을 끝낸 것이 아니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화협정 체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8차 당대회와 북한의 정책 방향
정 교수는 북한의 대남정책 전환이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결정된 배경을 분석하며, “북한의 정책 전환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경제 개발을 이루려는 시도가 좌절된 이후, 힘을 통한 평화로 전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실패 이후, 북한은 더 이상 협상을 통해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 “힘으로 미국을 제압해 평화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채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최근 러시아, 중국, 이란 등 반미 진영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하며, 북한의 외교적 방향이 신냉전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한-러시아 간 밀착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내부 변화와 MZ 세대의 영향
정 교수는 북한 내부에서도 세대 간 변화가 감지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MZ 세대로 불리는 젊은 층의 사회 문화적 가치와 과거 세대 간의 차이가 북한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통일 문제나 민족 문제에 대한 북한 젊은 세대의 관심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의 젊은 엘리트들이 “북한도 개혁 개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 내부에서도 경제 개혁을 통해 자원 동원을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초기와 현재의 북한 경제 및 사회 질서가 크게 변화했다고 강조하면서, 북한 사회가 개혁 개방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시사했다.
새로운 통일 운동 패러다임의 필요성
정 교수는 강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두 개의 국가론이 현실적인 상황에서 평화적 공존과 교류 협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통일 운동의 패러다임을 짜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북한이 통일을 먼 미래의 목표로 설정했다고 해서 남한까지 꼭 그럴 필요는 없다”며, 남북 간의 평화적 교류와 협력이 결국 민족 통일로 나아가는 초석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정 교수는 박정희 정권의 선건설론을 언급하며, 현재 북한의 두 국가론도 이러한 경제 개발 우선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우리를 건드리지 말고 경제 건설에 집중할 수 있게 하라”는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으며, 이는 북한이 통일보다는 경제 발전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마지막으로 “평화적 공존과 교류를 통한 점진적인 통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접근 방법”이라고 결론지으며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