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겨울, 기업 사무실 분위기는 지금과 전혀 달랐다. 연말 성과급은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조직 내 서열과 충성도를 확인하는 상징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해 직장인들의 성과급 봉투에는 또 하나의 이름이 따라붙었다. ‘평화의댐 성금’이었다.
당시 정부와 언론은 북한의 금강산댐 위협 가능성을 연일 부각했고, 전국에는 ‘국민적 안보 참여’ 분위기가 급속히 번졌다. 학교와 군부대, 관공서, 기업까지 성금 모금 행렬에 동참했다.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거액 기부를 발표했고, 방송 뉴스에서는 기업명과 함께 ‘회장 및 임직원 일동’ 명의의 성금 액수가 매일처럼 소개됐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사무실에서는 연말 성과급 발표 직후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직원들의 관심은 “얼마를 받느냐”와 동시에 “얼마를 내야 하느냐”로 옮겨갔다.
일부 회사는 사실상 반강제 방식의 모금에 들어갔다. 별도 현금 모금 대신 성과급에서 일정 금액을 공제하는 형태였다. 성과급 규모에 따라 차등 적용됐고, 일정 금액 이상 수령자는 고액 성금을 내야 한다는 내부 기준도 돌았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성과급을 받는 건지 성금을 내는 건지 모르겠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왔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안보 담론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당시는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기업 조직문화 역시 강한 상명하복 체계였다. 부서 평가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임원실을 직접 찾아가는 행동 자체가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2년차 직원이 과장, 부장 단계를 넘어 상무에게까지 평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조직 질서를 흔드는 행동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연말 고과 시즌이면 사무실 공기는 냉랭했다. 평가등급은 A·B·C·D·E로 나뉘었고, 등급에 따라 성과급 차이가 컸다. 그러나 실제 평가 기준은 지금처럼 체계적이지 못했다. 월별 평가표에는 책임감, 협조성, 능력 같은 항목이 적혀 있었지만 상당수는 상사의 주관적 판단에 좌우됐다.
직원들은 과장 표정 하나, 회식 자리 분위기 하나에도 평가가 달라진다고 느꼈다. 특히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일보다 사람 눈치가 중요하다”는 냉소가 적지 않았다.
그해 한 직원은 월별 평가표의 모순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평가 상향을 요구했고, 결국 임원과 직접 담판 끝에 성과급을 올려받았다. 하지만 어렵게 올린 성과급 가운데 상당액은 곧바로 평화의댐 성금으로 빠져나갔다.
당시 100만원은 지금 가치로 수천만원에 가까운 체감의 돈이었다. 직장인들에게 연말 성과급은 가족 생활비이자 전셋값, 결혼자금의 일부였다. 그만큼 성금 공제에 대한 체감 부담도 컸다.
그러나 사회 분위기는 개인 불만을 허용하지 않았다. 기업들은 애국심과 안보 의식을 강조했고, 직원들 역시 집단 분위기 속에서 침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86년 겨울의 평화의댐 모금은 단순한 기부 캠페인을 넘어, 당시 군사정권 시대의 조직문화와 집단 동원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