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경기동부연합’과 관련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인선을 계기로 과거 운동권 조직 ‘경기동부’와의 연관설이 제기되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NL(민족해방)계열 운동권’의 잔재 논란까지 확산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른바 ‘경기동부’라는 명칭이 서로 다른 두 조직을 지칭한다는 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1980년대 후반 결성된 **‘민주주의 민족통일 경기동부연합’**은 전국연합의 지역 조직으로, 합법적 등록은 아니지만 공개적으로 활동한 반(半)합법 단체였다. 전국연합은 1980년대의 ‘민통련’과 ‘전민련’의 후신 성격을 가진 운동권 연합체로, 당시 민주화운동 진영의 주요 조직 중 하나였다.
반면,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당시 주목받았던 ‘경기동부’는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의 하부 지하조직이었다. 민혁당은 1990년대 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해체된 조직으로, 내부에서는 ‘경기남부’로 불렸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민혁당 경기남부 총책이었으며, 그의 서열은 4~5위권으로 알려져 있다.
이 두 조직은 활동 지역이 성남 등 경기 동남권으로 겹치면서 외부에서는 흔히 ‘경기동부’로 혼용됐지만, 성격과 계보는 명백히 다르다. 전자는 공개적인 지역 시민운동 조직이고, 후자는 비공개 지하조직이라는 점에서 구분된다.
김현지 실장이 과거 사무국장으로 일했던 ‘성남시민모임’이 전국연합 계열의 경기동부연합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것은 사실로 확인된다. 그러나 민혁당의 하부조직과 직접적 연관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일부 운동권 출신들은 “NL 조직 이론상 지하당이 통일전선조직을 지도했기 때문에 지역 단체 간 인적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한다.
다만, 김 실장이 NL 내부의 조직구조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당시 성남의 시민운동 진영은 여러 계파가 혼재돼 있었고, 이재명 당시 시장을 중심으로 실용적 연대가 이루어졌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한편, 1990년대 성남은 NL계가 강세를 보이던 대표적 지역으로, 상명하복식 조직문화가 두드러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혁당 해산 이후에도 일부 세력이 독자 노선을 유지하며 통합진보당으로 이어졌고, 이석기 전 의원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위헌정당 판결의 중심에 섰다.
결국 ‘경기동부’라는 이름은 하나이지만, 그 속에는 공개 시민운동과 지하혁명조직이라는 전혀 다른 두 흐름이 공존해왔다. 정치적 공격이나 단순 연결론으로 치부하기보다, 이 복잡한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