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시기의 대북정책은 일관된 강경 기조를 유지하며 ‘정책 고착(path dependency)’ 현상을 보여왔다. 본래 외교정책은 국가 생존과 안보라는 포괄적 목표 하에 다양한 수단을 조정하는 과정이지만, 일본의 경우 특정 이슈와 수단이 반복되며 상위 목표 자체를 대체하는 구조가 형성됐다.
정책 고착은 초기 선택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로를 강화해 대안적 선택지를 차단하는 메커니즘이다. 일본의 대북정책은 제재와 불신의 구조가 반복되며 ‘대북 억지’ 자체가 최종 목표로 격상됐다. 이 과정에서 본래의 안보 확보라는 종합적 목적은 희석되고, 제재 지속과 납치문제 해결이 정책의 중심축이 되는 경향이 강화됐다.
일본은 상위 목표로 안보 보장을 내세웠지만, 북한의 핵실험과 합의 파기 경험 속에서 제재 강화와 납치문제 해결이 독자적 목표로 자리 잡았다. 즉, 제재와 협상 조건화가 수단을 넘어 스스로 정책 목표로 변질된 것이다. 이로 인해 대화와 협상 경로는 정치적으로 차단됐고, 정책 유연성은 상실됐다.
일본 대북정책 고착의 세 가지 요인
첫째, 구조적 불신이다. 1990년대 이후 반복된 합의 파기와 핵실험 강행은 일본 사회에 ‘북한은 합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제도적 학습 효과를 남겼다.
둘째, 납치문제의 내재화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 방북 이후 북한이 일부 사실을 시인했음에도 진상 규명이 지연되면서 납치문제가 대북정책의 최상위 목표로 고착됐다. 이로 인해 대화 시도는 ‘납치문제 해결 선결’이라는 조건으로 봉쇄됐다.
셋째, 사회적 담론과 정치적 구조다. 보수 언론과 납치자 가족회의, 자민당 내 대북특위 활동이 결합하며 ‘북한=협상 불가·안보 위협’이라는 인식이 제도화됐다. 그 결과 정치적 리스크 때문에 새로운 접근을 제시하기 어려운 환경이 고착됐다.
아베 정권의 대북정책은 결과적으로 안보라는 총체적 목표보다는 제재 유지와 납치문제 해결이라는 구체적 목표에 매몰됐다. 이는 일본 대북정책의 구조적 제약이자, 경로의존성이 어떻게 외교정책을 단선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