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최근 중단한 대북방송에 대해 정치권 안팎에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대남방송 중단 조치에 맞춘 상호주의적 대응이라며 체제 대결을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북한의 지속적인 군사도발과 반대한민국 노선 강화에 비춰봤을 때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22일 연합뉴스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대북방송 중단 결정은 ‘극심한 체제 대결 시대의 종식’을 염두에 둔 정부 판단에서 비롯됐다. 북한이 먼저 대남심리방송을 멈춘 데 따른 ‘화답’ 차원의 조치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이 알려진 직후, 정부가 내부 반발과 여론의 반향을 의식해 언론을 통해 명분을 흘렸다는 해석도 뒤따랐다.
북한은 체제 대결을 끝낼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3년 12월 3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한을 더 이상 동족이 아닌 ‘적대적인 교전국’으로 규정했으며,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총력전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후 북한은 러시아와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면서 극초음속 미사일, 정찰위성, 대형 군함 등 전략무기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2024년 체결된 북러 군사협력 협정 이후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선에 병력을 파견하고, 그 대가로 러시아의 첨단 무기 기술을 획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건조 중인 5천톤급 군함 역시 러시아 기술 지원설이 제기된다. 이러한 정황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단순한 수사에 그치지 않음을 시사한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북한의 대남공세는 활발하다. 주요 정부 기관, 금융망에 대한 해킹 시도는 물론, 사회불안 조장을 위한 여론조작 시도까지 포착되고 있다. 대외 방송의 효과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북한은 2003년 구국의 소리 방송을 선제적으로 종료한 적이 있으나, 실상은 대남 심리전의 무게중심이 온라인 공간으로 이동한 데 따른 전략적 선택이었다.
현재 국정원이 중단한 대북 라디오 및 TV 방송은 북한 주민들이 인터넷에 접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외부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다. 이러한 매체는 한국 사회의 일상,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통로로 기능해 왔다. 방송을 통한 정보 유입은 북한 주민들이 체제 선전 이외의 시각을 접하고, 판단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왔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한국식 표현, 말투, 콘텐츠 등을 철저히 단속하며 ‘비사회주의적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2025년 6월 학습제강에는 한국과 미국을 ‘철저히 소멸해야 할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대남 기구들은 ‘통일’이나 ‘동족’이라는 단어를 제거한 채 ‘대적지도국’, ‘대적연구원’ 등의 명칭으로 개편됐다. 이는 북한 당국이 남한을 철저한 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북방송은 단순한 심리전 수단이 아닌,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세계의 존재를 알리고, 대한민국 정부와 사회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는 유일한 창구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도 트럼프 행정부가 일부 중단 조치 후, 이란의 긴장이 고조되자 즉시 중단 인력을 복귀시키며 대외 방송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한 바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를 추구한다면, 대화의 메시지를 북한 정권이 아닌 북한 주민들에게도 직접 전달할 필요가 있다. 지금 같은 시기야말로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외부 정보 전달을 통해 북한 내부에 변화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일방적인 방송 중단이 아니라, 보다 전략적이고 유연한 대북 커뮤니케이션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