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해방군의 핵심 인사이자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인 장유샤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갈등을 넘어 정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부상한 배경에는 두 사람의 복잡한 과거와 당내 권력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장유샤와 시진핑의 인연은 아버지 세대에서부터 시작됐다. 장유샤의 부친 장중쉰 상장과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은 국공내전 당시 서북야전군에서 함께 싸운 동지였다. 두 사람의 오랜 친분은 자연스럽게 장유샤와 시진핑에게도 이어졌다. 그러나 이런 긴밀한 관계는 2022년 10월 중국공산당 제20차 당대회 이후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진핑은 20차 당대회를 통해 사실상 종신 집권 체제를 열었으나, 당 내부에서는 그의 장기 집권에 대한 불만이 확산됐다. 특히 2023년 초부터 시진핑의 군부 장악력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매년 초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던 ‘중앙군사위 1호 명령’이 2023년부터 공개되지 않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군부 재장악을 위해 시 주석에게 부담스러운 인물은 바로 장유샤였다. 당시 장유샤는 이미 72세의 고령으로 관례상 퇴진해야 했지만, 오히려 나이를 이유로 시진핑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대립했다는 후문이다. 장유샤는 시 주석보다 군 내부 신망과 실전 경험이 풍부했다. 그는 1979년 베트남과의 중월전쟁과 1984년 라오산 전투를 지휘한 유일한 실전경험자로, 군 내부 신뢰가 절대적이었다.
시진핑은 자신의 장기 집권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철저히 제거해왔다. 특히 자신과 같은 ‘혁명 2세대(훙얼다이)’ 출신이라도 권력 기반이 강하거나 당 내 개혁 성향이 강한 인사들은 몰아냈다. 대표적으로 후진타오 전 총서기, 원자바오 전 총리의 아들 등은 모두 정치적으로 소외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장유샤는 점차 훙얼다이의 중심 인물로 떠올랐다. 2023년 로켓군에서 발생한 기밀 유출 사건을 명분 삼아 시진핑 정권이 숙청을 벌였고, 이는 리상푸 국방장관 낙마로 이어졌다. 리상푸는 장유샤와 같은 산시방 출신으로, 그를 통해 장유샤까지 압박하려는 시 주석의 구상이었다.
그러나 시진핑의 시도는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장유샤 숙청 움직임이 본격화되자 군 내부는 물론 훙얼다이 세력까지 동요하며 강력한 반발을 표했다. 군의 중진들은 장유샤 부친과의 인연을 이유로 그를 지지하며 시진핑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결국, 시진핑의 숙청 시도가 역풍을 맞으며 오히려 자신의 리더십에 타격을 입혔다.
장유샤가 시진핑을 겨누는 칼이 된 배경에는 복잡한 당내 역학 관계와 역사적 인연, 그리고 군 내부의 실질적인 신망이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현재도 시진핑 정권은 이로 인해 군 내부의 동요와 권력 다툼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