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정권(2012~2020)의 북일 수교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단연 ‘납치 문제’였다.
아베 총리는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인정한 일본인 납치 사건을 적극 부각시키며 이를 ‘국민적 과제’로 설정했다. 2013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설립하자마자 ‘납치문제 대책본부’를 설치하고, 납치 문제를 일본 외교정책의 최상위 의제로 명시했다.
아베 정권은 ‘납치문제 3원칙’을 천명했다. △납치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납치 문제 해결 없이는 국교정상화가 불가능하며, △모든 피해자가 생존해 있다는 전제하에 접근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이 같은 원칙은 일본의 대북정책에서 타협 불가능한 핵심 조건으로 자리잡았다.
납치 문제는 국내 정치적으로도 강력한 결집 효과를 발휘했다. 일본회의 등 보수 우익단체와 보수 언론은 납치 문제를 ‘국가적 수치’로 지속적으로 프레이밍하며 아베 정권의 지지 기반을 확장했다. 2014년 역사교과서 개정 과정에서는 납치 피해자의 증언을 강조하며 사회적 공감대를 강화하기도 했다.
또한 납치 문제는 대북 교섭에서 강력한 레버리지로 활용됐다. 2014년 일본은 스톡홀름 합의에서 북한의 납치 피해자 재조사 약속에 따라 일부 제재 완화를 제시했으나 북한의 미이행으로 즉시 제재를 복원하며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강조했다. 2018년 북미 정상회담 직후 아베 총리가 다시금 “납치 문제 해결이 선결조건”임을 밝히며 일본이 교섭 주도권을 잡으려는 전략적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밖에도 아베 정권은 납치 문제를 역사 갈등의 맥락 속에 위치시키며 도덕적 우위를 선점하고자 했다. 위안부 합의 등 과거사 이슈에 대해서는 “납치 문제와는 차별화된 접근”을 내세워 납치 문제를 도덕적 정당성을 얻는 도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결국, 아베 정권의 북일수교 정책은 납치 문제를 중심으로 국내 보수층의 정치적 지지 확보, 대북 협상에서의 외교적 우위 유지, 역사문제에서의 정당성 확보라는 다차원적 전략이 교차하며 이루어졌다. 이는 일본 외교정책이 표면적으로 ‘국익 중심’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국내 정치적 요구에 밀접히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