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내 진보적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교수는 일본의 전후 처리 문제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과제가 북한과의 수교라고 평가한다. 와다 교수는 북한 문제를 단순한 외교 현안이 아니라, 일본이 전후(戰後)를 온전히 마무리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역사적 책무로 규정한다.
1950년대 이래 일본 사회에서는 북한과의 수교 문제를 ‘전후처리’의 일환으로 인식해 왔다. 특히 냉전 기간 중 소련과 중국 등 공산권 국가들과도 일정한 관계를 유지해온 일본은 국제정세가 긴장 완화 국면을 맞을 때마다 북한과의 수교 및 관계 정상화를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왔다.
그러나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할 때마다 발목을 잡은 것은 납치문제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었다. 특히 1997년 요코다 메구미 납치 사건이 알려지면서 일본 내에서 북한은 ‘역사적 피해자’에서 ‘납치 가해자’로 이미지가 전환되었고, 이는 북한과의 대화 자체를 어렵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의 방북과 ‘평양선언’으로 수교 협상의 돌파구가 마련되는 듯했지만, 납치 피해자 문제가 일본 여론의 최대 관심사가 되면서 대북 강경파가 급속히 득세했다. 결국 고이즈미 총리 시기의 북일 교섭은 납치 문제 해결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중단되었고, 이후 대북 강경 노선을 주도한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일본 총리로 등장했다.
아베 총리는 2006년 집권하자마자 “납치 문제의 해결 없이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는 없다”는 이른바 ‘납치문제 3원칙’을 내세우며 강경 정책을 고수했다. 2012년 재집권 후에는 북한과의 스톡홀름 합의(2014)를 통해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을 재개했지만, ‘납치 피해자 전원 귀국’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아 결국 협상은 다시 결렬되고 말았다.
이처럼 일본의 대북정책은 납치 문제를 중심으로 ‘국내 정치 게임’과 북한 핵 문제라는 ‘국제 정치 게임’이 복잡하게 얽혀 전개되어 왔다. 와다 교수는 “북한과의 수교는 역사적 화해의 관점에서 필수적이지만, 납치 문제가 여론의 중심에 있는 한 북한과의 교섭은 계속 벽에 부딪힐 것”이라며 “결국 일본 국내에서 납치문제에 대한 정책 전환과 미국과 북한 간의 핵협상 진전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북일 관계 정상화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와다 교수는 아베 총리의 현실주의적 측면도 지적한다. 그는 “아베 총리마저 스톡홀름 합의를 통해 북한과 교섭에 나선 이유는,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북한과 대화가 필수적이라는 현실주의적 판단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보수 정치권 내부에는 미일 동맹과의 관계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현실주의적 견해가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결국 북한 문제를 둘러싼 일본 보수 내 현실주의자와 이데올로그 사이의 균형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느냐에 따라 향후 일본의 대북정책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와다 교수는 “일본이 전후처리로서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납치 문제 해결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반드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