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형 중상주의란 산업정책 등의 형태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자원 배분과 기업 활동에 직접 관여하고, 대외적으로는 국내시장을 보호하며 특정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자는 주장이다. 이는 시장에 자율적으로 맡기는 자유주의 경제와는 다른 방향의 경제 운용 전략으로, 20세기 후반 일본의 고도성장기 경제운영 모델에서 기원한 개입주의적 사고에 기반을 둔다.
이러한 경제전략은 일본 경제산업성이 추진해온 ‘산업구조 비전’이나 ‘전략적 기술 육성’ 정책, 그리고 특정 기업군을 대상으로 한 금융지원 및 수출보조 제도 등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자동차, 반도체, 철강, 조선 등 전략산업에 있어 정부가 직접 규제와 지원을 병행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식이 중상주의적 색채를 띠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무역장벽, 외국인 투자 제한, 기술 유출 통제 등 보호주의적 조치가 동반되기도 한다. 최근 일본 정부가 ‘경제안보’를 이유로 첨단기술의 대중국 수출을 규제하거나 외국자본의 핵심 산업 투자에 엄격한 심사를 적용하는 사례도 이 같은 중상주의적 시각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중상주의는 단기적으로는 산업 육성과 전략적 자립을 도모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시장 경쟁력 저하, 비효율적 자원 배분, 관치경제화의 위험도 동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본 내에서도 지나친 정부 개입에 대한 비판과 자유주의적 개혁 요구가 병존하고 있다.
아베 시대, 경제적 자유주의와 일본형 중상주의의 충돌과 절충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집권기는 일본 경제정책의 노선을 놓고 경제적 자유주의(신자유주의)와 일본형 중상주의(일본형 경제시스템)가 충돌하고 동시에 절충된 시기로 평가된다. 그는 ‘아베노믹스’라는 이름 아래 시장주의적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국가 주도의 전략산업 육성과 보호주의적 조치를 병행하며 양자의 이념을 교차 적용했다.
경제적 자유주의적 요소는 아베노믹스의 ‘세 가지 화살’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화살에 뚜렷이 드러난다. 첫 번째 화살인 대규모 금융완화는 일본은행의 독립성을 희생하더라도 통화공급을 늘려 시장 유동성을 자극하겠다는 시도였고, 두 번째 화살인 재정지출 확대는 소비세 인상과 병행된 경기 부양책이었다. 특히 노동시장 유연화, 여성 노동력 확대, 규제 철폐, 기업지배구조 개혁 등은 시장 중심의 효율성과 경쟁을 강조한 신자유주의적 접근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이와 동시에 일본형 중상주의를 계승하고 강화하는 정책도 병행했다. 경제산업성이 주도한 첨단기술 및 반도체 산업 재건, ‘쿨 재팬’ 전략, 농업·의료 분야의 해외 진출 지원, 그리고 방위산업 육성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외국인 투자의 선별적 통제와 경제안보법 제정, 특정 기업에 대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은 정부의 산업개입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아베 정권의 대중국 경제정책에서도 이러한 중상주의적 경향이 부각됐다. 중국과의 기술경쟁 심화 속에서 반도체, 통신, 인공지능 등 전략기술을 자국 내에서 육성하고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됐고, 이는 단순한 산업정책을 넘어 국가안보와 직결된 ‘경제안보’ 개념으로 발전했다.
이 같은 이중전략은 글로벌 시장의 규범을 따르면서도 일본만의 경제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시도였다. 시장 효율성과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유주의적 개혁을 단행하되, 국가의 전략적 개입과 산업 보호는 철회하지 않는 ‘선택적 자유주의’ 또는 ‘관리된 자유시장’ 접근으로 요약될 수 있다.
결국 아베 시대의 경제정책은 경제적 자유주의와 일본형 중상주의의 충돌이라기보다, 두 이념의 병행과 절충을 통한 현실주의적 경제운영으로 귀결됐다. 이는 아베노믹스의 정치경제적 성격을 이해하는 핵심이며, 일본이 당면한 인구감소·기술경쟁·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혼합 경제 전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