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공식 확인되면서 5월 9일 열리는 전승절 80주년 기념식 참석 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는 현재 방문 시기와 일정 등을 조율 중이라고 밝혀, 김 위원장이 전승절을 계기로 다자외교 무대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승절은 1945년 소련이 나치 독일에 승전한 것을 기념하는 러시아 최대 국경일이다. 전통적으로 붉은광장에서 열리는 대규모 열병식과 함께, 반서방 연대를 과시하는 외교무대 역할도 수행한다. 올해는 80주년이라는 정주년으로 러시아가 더욱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번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할 경우, 단순한 양자 외교를 넘어 러시아와 중국, 이란 등 친러 국가들과의 다자외교 진입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승수 통일연구원 부원장은 “러시아는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인정받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북한의 다자 기구 참여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김 위원장이 여러 정상들 사이에서 ‘원 오브 뎀’으로 등장하는 것은 북한 체제 특성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수령제 체제의 특성상, 양자 회담에서 대등한 모습이 북한 내부 선전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실제로 2015년 전승절 참석 계획도 막판에 철회된 바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김 위원장이 전승절 이전에 모스크바를 먼저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단독 회담을 갖는 방식, 또는 9월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EEF)을 계기로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특히 북한 전용기의 비행 가능 거리 문제로 인해 모스크바 방문에 물리적 부담이 있는 만큼, 극동지역 개최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극동지역 회담은 전승절에 맞춘 상징성과 대외과시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극동은 이미 방문한 지역인 만큼, 김 위원장이 이번엔 러시아의 심장인 모스크바를 찾아야 국제사회에서의 정상 이미지가 부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방러 여부에 대해 공식 언급을 삼가고 있다. 통일부는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향후 결정이 북한 외교의 새 방향을 가늠할 주요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