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아베 정부 이후 ‘조건 없는 정상 만남’을 주장하며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지만, ‘조건 없는(납치문제 해결)’에 대한 양국의 해법이 다르다. 북한은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과와 납치자 현황 통보를 통해 일본인 납치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는 입장이다. 반면, 일본은 납치자 전원의 생존 귀환을 목표로 삼고 있어 양국 간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2023년 5월 2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조기 실현을 위해 “총리 직할의 고위급 협의를 진행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같은 해 3월과 5월 동남아시아 주요 도시에서 두 차례의 북일 간 비밀 접촉이 있었다는 보도(『아사히 신문』 2023년 9월 29일자)에 따라, 기시다 총리의 발언은 이러한 접촉의 긍정적 결과에 따른 것으로 해석됐다.
2024년 1월 일본 이시카와현에서 대규모 강진이 발생하자, 1월 6일 김정은 위원장은 기시다 총리 앞으로 ‘각하’ 호칭과 함께 위로 서한을 보냈다. 2월 15일에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일본 수상이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라는 담화를 발표해 기시다 총리의 ‘조건부 방북’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3월 25일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이 북한의 ‘납치 문제 해결’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양국 간 입장 차이가 다시금 부각됐다. 이에 대해 김여정 부부장은 다음 날 일본과의 ‘접촉 거부’ 입장을 표명했으며, 3월 29일 최선희 외무상이 공식적으로 ‘접촉 불가’를 선언했다.
하지만 5월 중순 몽골 울란바토르 인근에서 북한 정찰총국 및 외화벌이 관계자 3명과 일본의 유력 가문 출신 정치인이 포함된 대표단이 만났다는 보도(『중앙일보』 2024년 6월 13일자)가 나왔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답변을 삼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공식적인 언급을 피했다. 이를 통해 양국이 여전히 비공식적인 접촉을 제3국에서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작년 10월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북일이 도쿄와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북한이 납치 피해자의 소식을 공식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북과 같은 갑작스러운 정상회담보다는 점진적 접근을 선호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본 내 강경 보수 세력과 납치자 가족회는 이 같은 제안이 북한에게 시간 벌기용으로 악용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결국, 2024년 기시다 내각에서 이시바 내각으로 정권이 교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북일 관계의 기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양국은 여전히 ‘조건 없는 정상회담’을 표방하면서도 비공식 접촉을 이어가고 있으며,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북일 관계의 교착 상태는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