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행정부가 러시아와 종전 협상을 가속화하며 제재 해제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과 달리, EU는 강경 제재 기조를 유지하며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강화하는 모양새다.
이번 제재안에 따르면 EU는 러시아산 1차 알루미늄(primary aluminium)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한다. 이를 위해 12개월간 전년도 수입량의 80%인 27만5천t만 수입하는 쿼터제를 시행한 뒤, 2026년 말부터는 러시아산 알루미늄 수입을 전면 금지할 예정이다. 제재 우회를 차단하기 위해 러시아 우방국인 벨라루스산 알루미늄 수입도 함께 금지된다.
EU에 따르면 러시아산 알루미늄 수입 비중은 2020년 16%에서 2024년 6%로 이미 감소한 상황이다. EU는 이번 조치를 통해 보다 직접적인 제재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북한군 장성 추가 제재…우크라이나 파병 연루
이번 제재에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과 관련된 북한 고위급 인사들도 포함됐다.
EU 관보에 따르면 리창호 정찰총국장과 신금철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 처장이 추가 제재 대상에 올랐다. 리창호는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북한군 배치를 조율한 인물로, 신금철은 드론 등 현대적 전술을 북한군에 전파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EU는 설명했다.
리창호는 이미 한·미 양국의 독자제재 대상이며, 신금철은 한국의 독자제재 대상이었다. EU는 지난해 강순남 당시 북한 국방상, 김영복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노광철 전 국방상과 북한 미사일총국 등을 제재한 바 있다.
러시아 에너지·운송 부문 추가 제재
러시아 에너지 부문에 대한 제재도 더욱 강화됐다.
EU는 기존에 러시아산 원유의 최종 목적지가 제3국이면 EU 내 항구에서 임시 저장을 허용했으나, 이번 조치로 이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또한 러시아의 석유·가스 탐사에 필요한 유럽산 소프트웨어 수출도 금지된다.
다만, 제재 회피의 주요 수단으로 지목된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금지 조치는 이번에도 제외됐다. 역내 에너지 가격 급등을 우려하는 반대 여론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EU는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를 우회하는 데 활용되는 일명 ‘그림자 함대’ 소속 선박 74척과, 러시아 군산복합체 지원에 연루된 중국 등 제3국 법인 53곳을 제재 대상에 추가했다. 개인 48명과 법인·기관 35곳 등 총 83건의 제재가 새롭게 명단에 올랐다.
종전협상 속 미·EU 노선 차이…러시아 “유럽, 전쟁 원해”
이번 제재는 미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종전 협상에서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배제될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EU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확고히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해 “러시아가 항구적인 평화 협정을 위한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한, 우리는 더욱 강력한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러시아는 EU가 미국과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유럽은 전쟁이 지속되기를 원한다”며 “이러한 신념은 우리가 미국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식과는 완전히 대조적”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