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결국 헌법에서 ‘조국통일’ 표현을 삭제하고 대한민국을 별개의 적대국으로 규정하는 영토 조항까지 신설했다. 김정은이 직접 제시한 이른바 ‘적대적 두 국가론’을 헌법에 못 박은 것이다. 민족공동체와 통일 지향이라는 기존 북측의 형식적 명분마저 걷어낸 채, 사실상 ‘김정은 국가’ 건설 노선을 공식화한 셈이다.
이는 단순한 문구 수정이 아니다. 북한 체제가 더 이상 한반도 통일을 목표로 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며, 남북관계를 민족 내부 관계가 아닌 국가 대 국가의 적대관계로 재정의한 사건이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조차 유지했던 ‘통일’ 간판을 스스로 폐기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후퇴이자 반민족적 전환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상황이라면 대한민국 통일부는 최소한 강한 유감과 경계의 메시지를 내놓는 것이 상식에 가깝다. 그런데 정작 기자간담회에서는 엉뚱한 평가가 등장했다. 한 학자의 해석을 인용하며 “불변의 주적” 표현이 헌법 서문에 직접 담기지 않은 점을 들어 “평화공존의 기틀”로 볼 여지가 있다는 취지의 낙관론이 제기된 것이다.
북한이 헌법에서 통일을 삭제하고 적대국 개념을 명문화했는데, 정부 당국 일각에서는 오히려 “희망적 해석” 가능성을 이야기한 셈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북한 체제를 향한 일부 표현들이다. 자유와 인권, 선거와 권력 견제 어느 하나 존재하지 않는 세습 독재 체제를 두고 “국격 있는 국가”라는 식의 접근이 과연 타당한가. 공개 처형과 정치범수용소, 주민 통제와 핵·미사일 도발을 반복하는 체제를 상대로 지나친 의미 부여를 하는 순간, 대한민국 스스로 가치 기준을 흐리게 만들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 행동으로 입장을 보여줬다. 남북관계를 “동족”이 아닌 “교전 중인 두 국가”라고 규정했고,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지목했다. 대남기구를 정리하고 통일 관련 상징물까지 철거했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북한의 표현 하나를 떼어내 “평화의 신호”로 해석하려 한다. 희망적 사고와 전략적 현실 인식은 다르다.
특히 학계 일부에서 반복되는 ‘북한 선의론’은 이제 재검토가 필요하다. 현실보다 희망을 앞세운 해석은 결과적으로 북한 체제의 본질을 흐리고 국민 판단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학문적 자유는 존중돼야 하지만, 최소한 체제의 실체를 외면한 낭만적 접근까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북한은 한국 사회 내부의 이런 엇갈린 반응을 냉소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김여정이 조만간 담화를 통해 남측의 반응을 조롱하듯 비난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북한은 이미 “대한민국과는 더 이상 통일 대상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은 명확하다. 북한은 헌법까지 바꾸며 ‘두 국가 체제’를 선언했다. 그런데 대한민국 내부에서는 그 와중에도 의미를 축소하거나 긍정의 단서를 찾으려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근거 없는 낙관론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