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딸 김주애를 후계자로 공식화할 경우 권력 내부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다시 제기됐다. 김여정과의 갈등 가능성, 군부와 당 엘리트의 이해관계 충돌, 백두혈통 내부의 긴장 구조는 이미 수년째 반복돼 온 분석이다. 해외 언론도 북한 권력 가문의 잔혹한 숙청 전례를 거론하며 유혈 사태 가능성을 언급한다.
그러나 이런 시나리오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과 세습 구조의 취약성은 상수에 가깝다. 문제는 ‘가능성’의 나열이 아니라 ‘확률’을 좁히는 역량이다. 권력 암투의 드라마를 소비하는 사이, 정작 점검해야 할 것은 우리의 정보 체계다.
북한은 이미 전장을 확장했다.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 속에 무기 체계 현대화를 가속하고, 사이버 공간에서는 상시 교전을 이어가고 있다. 드론과 전자전, 해킹 조직의 활동은 단순 위협 수준을 넘어 구조적 도전이 됐다. 이런 환경에서 정보기관의 대공 수사 역량과 분석 기능이 충분히 유지되고 있는지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AI 시대의 정보전은 과거와 차원이 다르다. 오픈소스 정보는 폭증하고 있고, 위성 영상과 해상 데이터, 북한 매체의 어휘 변화까지 실시간 분석이 가능하다. 이를 체계적으로 통합하지 못하면 정보는 곧 소음이 된다. 휴민트 역시 데이터와 결합해야 생존한다. 탈북민 네트워크, 해외 파견 인력 동향, 북·러 물류 흐름을 단편적으로 보는 시대는 지났다. 연결과 교차 분석이 핵심이다.
사이버 방첩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간첩은 국경을 넘지 않는다. 서버와 암호화된 통신망을 통해 이미 내부로 침투한다. 국가 차원의 통합 사이버 방어 체계를 구축하지 못하면 전통적 정보 역량도 무력화된다.
정보기관은 정치의 하위 기관이 아니다. 정권의 이해와 무관하게 국가 생존을 기준으로 움직여야 한다. 투명성과 민주적 통제는 강화하되, 전문성과 기동성은 축소돼선 안 된다. 인공지능 분석 인력 확충, 민간 AI 기업과 연구기관과의 보안 협력 제도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북한 전문가들의 예측이 빗나갔다고 조롱하는 일은 쉽다. 그러나 진짜 과제는 틀릴 가능성을 전제로 끊임없이 데이터를 축적하고 알고리즘을 갱신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감이 아니라 모델과 검증의 문제다.
평양의 후계 구도가 어떻게 전개되든, 한국은 흔들려선 안 된다. 세습 권력의 안개에 시선을 빼앗기기보다, 우리의 눈과 귀를 더 정밀하게 갈아야 한다. 정보 역량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순간, 불확실성은 위협이 된다. 권력 암투의 장면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보전의 승패가 결국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