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9월 1일 수도권을 강타한 관동대지진은 10만 명이 넘는 사망·실종자를 남겼다. 그 혼란 속에서 유언비어가 확산되며 조선인을 비롯한 다수의 이주민이 각지에서 학살당한 비극이 발생했다. 아직까지 진상이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이 사건을 현대적 시선에서 다시 성찰하는 연극 ‘祈りの大地’가 11월 27일부터 12월 7일까지 도쿄예술극장 시어터 웨스트에서 공연된다.
작·연출은 일본과 한국의 역사적 주제를 다뤄온 시라이 케이타가 맡았다. 그는 기존 작품에서 일제강점기·전후 한일 관계를 소재로 삼아온 바 있으며, 이번 신작을 통해 일본의 가해 역사와 그 기억의 계승 문제를 다시 탐색한다. 작품은 관동대지진 후 유포된 유언비어, 계엄령이 내려진 도시의 분위기, 그리고 폭력 속에서 소멸된 개인의 삶을 무대적 언어로 재현한다.
극은 2023년 도쿄 서쪽의 한 지역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사회부 기자 가와카미 료헤이와 발레 교사 에미코는 두 자녀와 함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에미코의 실가를 개축하며 지하에 레슨실을 조성하던 중 땅속에서 사람의 뼈가 발견된다. 이 순간, 에미코의 아버지 겐타로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며 시간은 100년 전으로 겹쳐진다. 그의 할머니 치요가 전해준 기억 속에는 대지진 직후 이 땅에서 벌어진 어머니와 딸의 비극이 남아 있다. 과거의 목소리는 현재 세대에게 말을 걸며, 잊힌 역사가 가족의 삶 속으로 떠오른다.
공연 시간은 약 2시간 30분이며 15분의 휴식이 포함된다. 후원은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아사오구가 맡는다. 제작진은 “입장객이 사건의 사실 여부를 떠나, 기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작품은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모 논쟁, 지방자치단체의 추도문 중단 문제, 역사 부정 논란 등 일본 사회의 현재와도 맞닿는다. 과거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과 이를 회피하려는 분위기가 공존하는 가운데, ‘祈りの大地’는 극장을 하나의 증언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관객은 무대에서 재현되는 100년 전의 이야기와 오늘의 도쿄를 동시에 체감하게 된다. 작품은 지역 기억, 역사적 책임, 세대 간 전승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발견이 사회 전체의 질문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