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남은 가족을 돕기 위한 송금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탈북민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국내 탈북민 사회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인도적 송금 관행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나온 첫 무죄 판결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북부지법 형사4단독 이창열 부장판사는 지난 11월 28일 50대 탈북민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A씨가 브로커들과 함께 북한 가족 송금을 업으로 한 것으로 보고 기소했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의 계좌 입출금 내역에서 브로커들이 관행적으로 떼어가는 수수료 공제 정황이 전혀 없고, 별도의 장부나 관리 흔적도 발견되지 않는 점을 무죄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식당 일 외에 송금 수수료로 생계를 유지했다는 검찰 주장 역시 입증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 상당수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검찰이 송금 과정과 자금 흐름을 명확히 특정하지 못해 공소 기각 취지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송금이 은밀한 점조직 형태로 이뤄지는 특수성은 이해되나, 검찰의 수사가 추측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A씨 측이 주장한 공소권 남용 논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 측은 북한 가족 송금은 인도적 성격이 강함에도 2023년 윤석열 정부에서 남북 갈등이 고조되자 경찰이 광범위한 수사로 실적을 쌓으려 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합법적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브로커 단속 필요성은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북한 가족 송금은 탈북민 사이에서 가족 생계 지원과 추가 탈북 비용 마련 등을 위해 수십 년간 비공식적으로 이뤄져 왔다. 그러나 2023년부터 경찰이 대대적으로 수사에 착수하며 다수의 탈북민이 기소됐고, 인도적 활동을 범죄로 취급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번 사건은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이탈주민 법률지원위원회가 공익소송으로 변론했다. 변호인단의 김홍율 변호사는 “북한 주민에게 송금할 공식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송금 중개마저 단속하면 가족들이 생존 위기에 처하게 된다”며 “이 사건을 계기로 송금 관련 수사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A씨 외에도 여러 탈북민이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어 이번 판결이 향후 수사·재판의 기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