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조선노동당 창건 80돌을 맞아 이틀 연속 대집단체조 공연과 열병식을 열었다. 김정은은 공연 현장에서 직접 연설하며 “가을비에 찬바람까지 싸늘한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라며 주민들의 충성심을 치하했다. 그러나 그 ‘비 속의 환호’는 철저히 통제된 공포의 결과였다.
열병식이 열린 평양 김일성광장은 지난 이틀간 차가운 빗줄기에 잠겼다. 수천명의 군인과 동원된 주민들은 우비 한 장 없이 자리를 지켰다. 김정은이 등장하자 일제히 인공기를 흔들고 구호를 외쳤다. 이 장면은 북한 체제의 본질, 즉 개인의 자유와 생명이 집단선전의 도구로 전락한 현실을 보여준다.
군사 전문가들의 관심은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무기와 청소년으로 구성된 ‘소년근위대’로 쏠렸다. 하지만 진정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무기를 바라보며 함성을 지르던 수만 명의 사람들이다. 그들 중 누구도 비를 피할 수 없었고, 누구도 몸을 움직일 자유조차 없었다. 인간이 아닌 ‘부품’으로 기능하도록 훈련된 사회의 참상이었다.
대집단체조 ‘김정은 결사옹위’ 공연에는 10만여 명이 동원됐다. 공연 참가자들은 정해진 구호와 동작, 표정까지도 통제받는다. “잘대충성” “절대복종”의 구호가 무대와 관중석을 메웠다. 그 한가운데서 김정은은 미소 지었고, 북한 매체들은 “온 나라가 감격과 환희에 젖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이 비극적 장면을 바라보는 남한의 태도다. 대통령실은 이를 “북한의 내부 행사”라고 규정하며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인류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이 행사는 단순한 ‘내부행사’가 아니다. 청소년까지 동원된 정치 선전, 주민의 강제노역과 감시 속에 진행된 집단행사는 명백한 인권 유린이다.
국제인권규범은 ‘비자발적 동원’과 ‘정치적 세뇌’를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세계의 눈앞에서 이를 공공연히 자행했고, 남한 사회의 일부는 침묵했다. 반독재와 인권을 외치던 이들이 그 현장을 보면서도 북한 주민의 고통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틀간의 평양의 밤은 조명과 폭죽으로 장식된 축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김정은식 충성극의 무대이자, 인권이 철저히 짓밟힌 잔혹극이었다. 비에 젖은 광장의 함성은 환호가 아니라 절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