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표 선생의 서거 1주기를 맞아 추모식이 열렸다. 선생의 묘역에는 ‘영원한 재야’라는 문구와 함께 그의 삶을 압축하는 이정표가 새겨져 있다.
장 선생은 1972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첫 옥고를 치른 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규탄하며 유신체제에 맞서 다시 투옥됐다. 1977년부터 1979년까지 긴급조치 9호 위반, 1986년 청계피복노조 사건, 인천대회 주도 사건 등으로 수차례 옥살이를 이어가며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에 섰다. 1990년에는 민중당 정책위원장을 지냈고, 1997년부터 2024년 별세하기까지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을 맡아 새로운 사회 비전을 모색했다.
그의 곁을 지킨 조무하 여사는 50년을 함께했고,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53년을 동지로 보냈다. 김 전 지사는 추도사 도중 여러 차례 말을 잇지 못하며 울먹였다는 후문이다.
지난 12개월 동안 한국 사회는 정치적 격랑 속에 흔들려 왔다. 추모식에 참석한 한 인사는 “장 선생이 이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여전히 그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며, 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해달라는 염원을 남겼다.
장기표의 삶은 권력의 안온한 길 대신 고난의 재야를 택한 선택의 기록이었다. 그의 묘비가 말하는 ‘영원한 재야’는 곧 한국 민주주의가 걸어온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