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직후 내놓은 입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피하고 한국만 정조준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7일 ‘비핵화 망상증에 걸린 위선자의 정체가 드러났다’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이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비핵화를 언급한 것을 강하게 비난했다. 북한은 “아직도 헛된 기대를 점쳐보는 허망한 망상”이라며 “핵정책은 외부 위협 속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며, 이를 바꾸려면 세상이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한반도 평화 정착과 비핵화를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며 “NPT 의무 준수는 남북 모두의 이익”이라고 강조했지만, 북한은 이를 “놀아댄 추태” “비핵화 망상증”이라 표현하며 실명까지 언급했다. 다만 이번 입장은 외무성 담화가 아닌 관영매체 논평 형태로 발표됐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정상회담 자체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총비서와의 만남 의지를 드러내며 “연내 김정은을 만나고 싶다”고 밝힌 사실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이 제안한 ‘트럼프 월드’ 평양 건설 언급에도 트럼프가 긍정적 반응을 보였던 만큼, 북한이 향후 북미 대화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놓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의 이번 행보는 대남 압박을 지속하면서도 트럼프의 ‘러브콜’에는 즉각 반응하지 않으려는 전략적 계산으로 읽힌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북한이 반응을 늦추는 건 미국이 실제 대북정책 변화를 내놓는지 지켜보겠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김정은 총비서가 한미 정상회담 당일 지방 양식사업소를 찾아 민생 행보를 부각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북한은 대외적으로는 자제된 태도를 취하면서 내부적으로는 대응책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해 한중일 정상회의 공동선언에 ‘비핵화’ 표현이 포함됐을 때는 불과 두 시간 만에 외무성 담화를 냈다. 이번에는 수위와 격을 조절하며 한국만 비난하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관리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