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8일 이재명 정부를 향해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내고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이날 담화를 통해 남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일축하며 ‘두 국가’ 기조를 재확인했다. 이는 현 정부 출범 54일 만에 북측이 내놓은 첫 대남 메시지다.
김 부부장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 없다”고 말하며, 남한은 협력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역사적 결론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한국은 ‘보수’든 ‘민주’든 관계없이 절대 화합과 협력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동족이라는 표현 자체에서 탈피했다고 강조했다.
이날 담화는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전단 살포 금지, 북한 개별관광 재개 움직임 등 이재명 정부의 긴장완화 조치를 평가절하하는 내용도 담겼다. 김 부부장은 이를 “진작에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되돌린 것에 불과하다”며, 감성적인 말 몇 마디로 관계를 바꾸려는 기대는 “엄청난 오산”이라고 비판했다.
10월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김정은 국무위원장 초청설에 대해서도 “헛된 망상을 키우고 있다”고 일축했다. 또한,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해서는 “조선반도에서 초연이 걷힐 날이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통일부의 정상화 추진에 대해서는 “흡수통일 망령에 사로잡힌 자들”이라고 비난했다.
북측은 ‘국가 대 국가’라는 전략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한국 정부의 정책 변화에 첫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서 미묘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전략적으로 남한의 통일 지향 기조에 선을 긋고 대립 구도를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과거의 무시 전략에서 정책적 관심 대상으로 인식 전환을 시작한 조짐”이라며, 담화 수위가 전례보다 낮아졌다는 점에서 일정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김여정의 이번 담화는 북한 주민들이 접하는 노동신문에는 게재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북한 당국이 내부보다는 외부를 향한 선전 메시지로 판단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정황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