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의 전제로 ‘이스탄불 합의’ 이행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합의가 사실상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항복과 무력화, 친러 정권 수립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당초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협상팀은 푸틴의 이른바 ‘예방 전쟁론’을 받아들여,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포기와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 등 지역에 대한 실효적 통제를 인정하는 수준에서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푸틴은 기존 점령지를 넘어 미점령 지역까지 포함한 우크라이나 영토 전부를 넘기라고 요구하며 사실상 협상 가능성을 막았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가 협상 전제조건으로 우크라이나의 완전 항복을 고집한다고 밝혔다. 특히 러시아는 지난 2022년 3월 우크라이나와 맺은 ‘이스탄불 합의’를 기준으로 협상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 합의 내용이 공개되자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반발이 커졌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포기뿐 아니라 △우크라이나군 철수 △중립화 △비군사화 △비나치화를 요구했다. 비군사화는 사실상 군사력을 크게 축소해 방어 능력을 무력화시키고, 비나치화는 현 젤렌스키 정부 퇴진과 친러 정권 수립을 의미한다. 또한 러시아는 안전보장 국가 중 하나로 참여해 다른 국가들의 안보 조치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조건도 포함됐다.
이러한 조건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다. 지난해 4월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이 합의에 서명 직전까지 갔으나,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이 이를 강력히 반대하면서 합의가 무산됐다. 당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이 합의는 사실상 러시아에 항복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한 바 있다.
푸틴이 협상 과정에서 강조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명분인 ‘예방 전쟁론’과 ‘네오나치 정권 타도’ 주장 역시 사실관계와 동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BBC 등 서방 매체들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대인 출신으로 나치와 무관하며, 우크라이나 내 극우 세력의 영향력도 매우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푸틴이 강조하는 이스탄불 합의는 전쟁의 종식보다는 우크라이나를 사실상 러시아의 속국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이 협상 조건을 완화하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는 피할 수 없다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