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참전 용사이자 미국 정치권의 대표적 지한파(知韓派)로 꼽히던 찰스 랭글 전 연방 하원의원이 미국 현충일(메모리얼 데이)인 26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4세.
가족 측은 이날 랭글 전 의원이 뉴욕에서 타계했다고 밝혔다. 뉴욕시립대 측도 “미 하원에서 46년간 선구적인 활동을 펼친 랭글 전 의원이 메모리얼 데이에 별세했다”고 전했다.
1930년 뉴욕 맨해튼 할렘에서 태어난 랭글 전 의원은 1970년 민주당 소속으로 뉴욕주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2017년 은퇴할 때까지 23선의 중진으로 의정 활동을 펼쳤다. 그는 특히 미국 내 흑인 사회를 대표하는 거물급 정치인으로서 명성을 얻었다.
랭글 전 의원은 한국과도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미 육군 2보병사단 503연대 소속으로 참전해 중국군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으며, 이러한 공훈을 인정받아 미국 정부로부터 퍼플하트와 동성 무공훈장을 수상했다. 한국 정부 역시 2007년 수교훈장 광화장을, 2021년에는 백선엽 한미동맹상을 수여했다.
그는 의원 생활 내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국전쟁의 의미를 미국 사회에 환기시키는 데 주력했다. 1977년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에 적극 반대했고, 미국 의회 내 지한파 의원 모임인 ‘코리아코커스’를 창설하며 초대 의장을 맡았다. 또 ‘한반도 평화·통일 공동 결의안’(2013년), ‘이산가족 상봉 촉구 결의안’(2014년), ‘한국전쟁 종전 결의안’(2015년) 등 한반도 관련 결의안들을 직접 발의하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또한 민주당 소속임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지지하며 협정 체결에 크게 기여했고, 한·일 과거사 문제에도 분명한 입장을 취했다. 2014년 일본 아베 내각이 고노 담화를 검증하려 하자 반대 서한을 보내는 데 동참했고, 2015년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 당시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는 서한 발표에 참여했다.
랭글 전 의원은 2021년 백선엽 한미동맹상 수상 당시 “한국은 전쟁 폐허를 딛고 국제적 거인으로 부상했다”며 “남북 간 평화를 촉진하고 한미 양국이 더 가까워지길, 또 분단된 한반도가 내 생전에 통일되길 소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의원직 은퇴 이후 그는 뉴욕시립대에서 지역 일자리 확대 등 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해 왔다.
하킴 제프리스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랭글 전 의원을 “애국자이자 영웅, 정의의 챔피언”이라며 “할렘과 뉴욕, 미국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 인물”이라고 평가했고,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그를 “위대한 친구이며 항상 미국의 이상을 위해 싸운 인물”이라고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