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권력 내부에서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주도하는 비공식 엘리트 조직의 영향력이 확대되며 김정은 체제의 통제력과 견제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국회입법조사처 이승열 입법조사관은 최근 발표한 ‘북한 엘리트 내 권력구조의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최룡해가 2017년 당 조직지도부장에 오른 이후 측근들이 당정군 핵심 보직에 대거 진출하며 사실상 권력 독점 구조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당 조직지도부장은 수령의 유일영도를 실행하는 핵심 지위로 ‘당 속의 당’이라 불리며 실질적인 2인자 역할을 수행한다. 보고서는 이 조직이 최룡해를 중심으로 사실상 단일 후견체제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에 ‘역설적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군부 내 최룡해의 비공식 인맥으로는 2012년 그가 총정치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함께 일한 리영길(총참모장), 노광철(인민무력상), 김수길(총정치국장) 등이 거론됐다. 이들은 최룡해가 조직지도부장에 오른 직후 각기 군권의 핵심 보직으로 임명되며 권력 전면에 등장했다.
당내 비공식 조직으로는 박태성(내각총리), 정경택(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재룡(당 규율조사부장), 김덕훈(당 경제부장), 리히용(당 중앙위 비서), 리병철(군수정책담당 총고문) 등이 언급됐다. 이들은 이전까지 중앙무대에서 존재감이 미미했으나 최룡해의 후광을 업고 주요 직책에 오른 인물들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최룡해에 대한 내부 견제 역시 급속히 약화됐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한때 후계설이 제기되며 잠재적 견제자로 떠올랐던 김여정은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고, 조용원 조직지도부장은 영향력 확대 시도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지방발전 사업 등 비중 낮은 분야에 국한된 활동을 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김정은 집권 초기 빈번했던 숙청정치가 2017년을 기점으로 사실상 종식됐다고 분석했다. 김덕훈 내각총리가 김정은으로부터 ‘정치 미숙아’라는 질책을 받고도 자리를 유지하고, 박태성 위원장이 위성발사 실패에도 후속 기회를 부여받은 사례를 그 근거로 들었다.
이승열 조사관은 “김정은이 최룡해에게 객관적 권위를 부여한 것은 경제위기와 외교고립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라고 해석하면서도, “지배엘리트 간의 경쟁과 견제 기능이 사라진 지금의 구조는 오히려 체제 유지 논리의 근간을 흔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