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독트린을 넘어선 일본의 변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기존 일본 외교의 기조였던 ‘요시다 독트린’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외교 전략을 펼쳤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 구상과 ‘G7 대 유라시아’ 구도를 중심으로 한 외교 정책은 일본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기존의 소극적 외교 노선을 과감히 수정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전통적 일본 외교: 요시다 독트린의 한계
전후 일본 외교의 근간은 ‘요시다 독트린(Yoshida Doctrine)’이었다. 이는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확립한 외교 원칙으로,
- 미국과의 긴밀한 동맹을 유지하며 안보를 의존하고,
- 군사적 부담을 줄이는 대신 경제 발전에 집중하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일본이 전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지만, 국제 정세가 변화함에 따라 일본 외교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핵 개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변화 속에서 일본의 외교적 역할 확대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아베 신조의 외교 전략: 적극적 역할론과 지역 주도
아베 신조는 요시다 독트린을 대체하는 새로운 외교 전략을 추진했다. 그는 일본이 단순한 경제 대국이 아니라 ‘전략적 리더십’을 갖춘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주요 외교 정책을 펼쳤다.
1.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 전략
아베 신조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 Free and Open Indo-Pacific)’ 전략을 통해 일본이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인도양까지 외교적 영향력을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중국 견제: FOIP 전략의 핵심 목표 중 하나는 중국의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일본은 미국, 인도, 호주와 함께 ‘쿼드(Quad)’ 협력을 강화하며 중국의 해양 팽창을 견제했다.
- 해양 안보 강화: 일본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협력해 해양 안보를 강화하고,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일방적인 군사적 확장을 저지하는 데 주력했다.
- 경제 협력 확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일본이 주도하는 경제 개발 및 인프라 지원을 강화하며, 중국 중심의 경제 네트워크에서 벗어나려는 전략을 펼쳤다.
2. G7 중심 외교와 유라시아 전략
아베 신조는 일본을 미국과 유럽의 주요 선진국(G7)과 긴밀히 결속시키는 한편, 유라시아 대륙을 포함한 글로벌 외교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 미국과의 동맹 강화: 아베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며 미·일 동맹을 더욱 강화했다. 이는 일본의 안보 역할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 러시아 접근 시도: 아베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며, 북방영토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을 지속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일본의 대러 외교는 다시 경색되었다.
- 유럽과의 협력 확대: 유럽연합(EU)과의 경제 및 안보 협력을 강화하며, 일본을 단순한 아시아 국가가 아니라 글로벌 외교의 중심으로 만들려 했다.
3. 군사·안보 정책 변화: 적극적 평화주의
아베 신조는 일본 헌법 9조(전쟁 포기 조항)의 해석을 변경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는 일본이 전통적으로 유지해온 ‘비군사적 외교’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 조치였다.
- 집단적 자위권 허용: 2015년 안보법 개정을 통해 일본 자위대가 동맹국을 방어할 수 있도록 조치.
- 방위력 증강: 미국과 협력해 일본의 방위 예산을 증액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군사 협력을 강화.
- 방산 협력 확대: 동남아 국가들에게 방산 장비를 지원하며 일본의 안보 영향력 확대.
아베 신조 외교 전략의 성과와 한계
아베 신조의 외교 전략은 일본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요시다 독트린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기여했다.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보다 적극적인 외교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으며, 중국을 견제하는 새로운 외교 노선을 구축했다.
그러나 몇 가지 한계도 존재했다.
- 중국과의 긴장 고조: FOIP 전략과 대중 견제 정책은 일본과 중국 간 갈등을 심화시켰으며, 경제적으로도 부담을 초래했다.
- 러시아 외교 실패: 아베가 추진한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노력은 실질적인 성과 없이 끝났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일본은 강경한 대러 정책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 국내 반발: 집단적 자위권 허용 등 안보 정책 변화는 일본 국내에서 강한 반대에 부딪혔으며, 일본의 평화헌법 정신과 배치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아베 신조 외교 전략이 남긴 유산
아베 신조의 외교 정책은 일본 외교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요시다 독트린의 소극적 외교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외교를 추진함으로써 일본이 국제 사회에서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가 남긴 FOIP 전략은 여전히 일본 외교의 핵심 축으로 남아 있으며, 이후 정권들도 이를 기반으로 외교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아베의 대미·대유럽 외교 기조는 일본이 글로벌 정치에서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
아베 신조의 외교 정책은 일본을 단순한 경제 대국에서 벗어나, 안보와 외교적 영향력을 가진 국가로 변모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그의 외교 전략은 일본 정치와 국제 관계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