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의 재래식 전력에 대한 방어 책임을 한국이 주도적으로 맡아야 한다는 방향을 공식화하면서 주한미군의 태세와 운용 변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3일 공개한 국방전략(NDS)에서 한국이 대북 억제에서 주된 책임을 질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확장억제, 즉 핵우산을 중심으로 북한의 핵 위협 억제에 집중하고, 재래식 방어는 한국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NDS는 미국의 지원을 더 제한적인 수준으로 조정하더라도 한국이 한반도 재래식 방위를 감당할 수 있다는 판단을 담았다. 이는 한국이 자체 대응이 어려운 북핵 위협에 대해서는 미국이 계속 책임지되, 재래식 전력 억제는 한국 주도로 전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같은 방향성은 트럼프 행정부가 국방전략 수립에 착수한 지난해부터 예고돼 왔으며, 한미 정상 간 합의와 핵협의그룹 공동 성명 등을 통해 일정 부분 공감대가 형성돼 왔다. 재래식 방위에서 한국의 비중이 커질수록 주한미군의 규모와 구성에도 변화가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NDS는 대북 억제 역할의 조정이 한반도 내 미군 태세를 업데이트하는 데 미국의 이익과 부합한다고 명시했다. 미 국방 당국은 주한미군의 숫자보다 역량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반복해 왔으며, 억제력 저하 없이 태세 조정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상군 비중을 줄이는 대신 공군과 해군, 장거리 타격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이 검토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중국 견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미국의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주한미군을 대만 해협 등 역내 다른 분쟁에 투입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이런 흐름은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독자적 방위 역량 강화를 전제로 전작권 전환 조건 달성에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주한미군의 대규모 감축이나 철수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과거에 비해 다소 완화된 분위기다. 2026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에는 주한미군 병력을 2만8천500명 미만으로 감축하는 데 예산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제도적으로 급격한 감축을 제어하는 장치가 마련된 셈이다.
한국의 국방 예산 증액 기조 역시 미국의 동맹 책임 강화 요구와 맞물리며 갈등 요인을 줄이고 있다. NDS는 국방비 지출 인상에 부응한 국가로 한국을 지목하며 모범 동맹으로 평가했다.
미국은 한국뿐 아니라 유럽과 중동의 동맹에도 자국 방어 책임을 더 크게 부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특정 동맹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본토 방위와 중국 억제에 역량을 집중하려는 미국의 전반적 전략에서 나온 접근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미국이 대중국 견제를 최우선 목표로 삼는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태세와 규모를 일부 조정하려는 시도가 이어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러한 구상은 NDS 작성을 주도한 미 국방부 정책 책임자의 방한 등을 계기로 보다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NDS는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을 주요 위협으로 규정했으며, 북한에 대해서는 한반도는 물론 미국 본토에도 위협이 되는 존재라고 평가했다. 특히 북한의 핵 역량이 고도화되면서 미국 본토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핵 공격 위험이 있다고 적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 가능성을 언급해 온 가운데, NDS가 북핵 위협의 심각성을 분명히 한 만큼 이를 완화하기 위한 외교·국방 차원의 병행 노력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