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억제·자력갱생은 유지, 남북 병행전략은 축소…김정은 “남조선은 주적” 발언 이후 체계적 전환 가속
북한이 내년 열릴 것으로 보이는 조선로동당 제9차 당대회를 앞두고 기존 통일 노선을 사실상 접고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전환하는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김정은이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남한을 “주적이자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도록 헌법 개정을 촉구한 데 이어, 2025년 9월 연설에서는 “비핵화 강요를 중단하지 않으면 미국과의 대화는 없다”고 천명하면서 기존 병행전략을 완전히 재정렬하는 모양새다.
2023년 12월 열린 조선로동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는 “남조선을 화해·통일의 상대로 보던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문구가 공개됐다. 이후 북한은 남북 철도·도로 연결 중단, 대남 교류 폐지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통일정책의 실질적 폐기를 준비해왔다. 대북 전문 매체들은 올해 들어 “9차 당대회가 통일조항의 축소 또는 삭제를 공식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번 당대회는 ▲핵무력의 고도화·현대화 ▲자력갱생 중심의 경제계획 강화 ▲조·중·러 연대 심화 ▲대남 통일전략 폐기 및 대적정책 전환 등을 담은 ‘새로운 국가발전 전략’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이미 2023년 전원회의에서 대남·대외 정책의 ‘결정적 전환’을 선언한 바 있다.
김정은은 올해 9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외부의 안보 위협에 대처하고 압도하는 우리의 핵무력이 완벽히 가동되고 있다”며 “미국이 비핵화를 강요하지 않는다면 대화 자체를 피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조건부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핵무력의 협상 불가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9차 당대회에서 ‘통일’을 삭제하거나 축소한 새로운 당규를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는 남북 관계를 ‘민족 내부 문제’가 아닌 ‘적대국 간 관계’로 전환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는 평가다.
미국 변수도 주목된다. 현재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는 10월 기준 38조 달러를 넘어섰고, 재정책임위원회(CRFB)는 향후 10년간 이자 지출만 14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를 ‘지급불능’ 상태로 단정하는 것은 과장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의 재정 압박이 동맹 방위비 분담이나 대북 억제 전략 조정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동북아 안보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초래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북한은 통일 담론을 폐기하고 현실적 억제와 생존의 논리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핵억제력과 자력갱생을 유지하면서도, 남북관계는 ‘통일’이 아닌 ‘대적 관리’로 정리하는 구조다. 내년 9차 당대회가 이러한 변화를 헌법과 당규에 명문화할 경우, 한반도 정세는 ‘통일의 시대’에서 ‘국가 대 국가의 대치시대’로 완전히 이행하게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