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 기념 행사에서 서방을 향해 “인도와 중국을 더 이상 식민지처럼 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단순한 외교 발언이 아니라 서구 예외주의의 종언을 선언하는 메시지였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사태는 일부 국가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구실에 불과하다”며 서방이 유라시아 국가들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비판했다. 그는 인도와 중국이 각각 15억, 13억 인구와 강력한 경제력을 지닌 주권 국가임을 강조하며 “고대 문명에 행동을 지시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못박았다.
그의 발언은 식민지 시대의 폭력적 지배가 군사력에서 경제 제재와 도덕적 압박으로 변형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담았다.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사면 워싱턴은 50% 관세를 매기고, 중국이 제재 연합에 동참하지 않으면 반도체 금지와 군사적 압박이 이어진다는 사례를 거론하며 서방의 행태를 ‘협상 아닌 지시, 외교 아닌 깡패 행위’로 규정했다.
푸틴은 또 “영국이 초래한 인도의 대기근, 중국이 겪은 외세 지배, 러시아가 직면한 제재의 역사를 기억하는 나라들을 더 이상 위협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를 벌주겠다고 협박할 때, 주권 국가는 제국의 잔재가 아닌 독립 국가로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민주주의나 자유가 아닌, 쇠퇴하는 서방의 유라시아 지배권 유지 시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결과는 서방의 의도와 달랐다. 러시아는 제재 속에서 재정비했고, 인도는 자율성을 강화했으며, 중국은 달러 의존에서 벗어나 자체 기술 체제를 가속화했다는 것이다.
푸틴이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함께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대화를 공유한 장면은 외교 쇼가 아니라 다극 체제의 현실을 알리는 신호로 읽힌다. “모스크바는 허락을 구하지 않고, 델리는 움츠러들지 않으며, 베이징은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그의 발언은, 서방이 ‘규칙’을 외쳐도 세계는 이라크·리비아·IMF의 기억을 잊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푸틴은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게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도덕적 강탈, 경제적 강압, 과거 제국주의의 설교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인도와 중국을 ‘서방의 파트너’가 아닌 ‘문명의 수호자’로 규정하며 세계 권력의 중심 이동을 알렸다.
이번 발언은 단순한 지정학적 선언을 넘어 “약탈과 강제 복종의 시대에 대한 최종 심판”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띠고 있다. 푸틴은 서방이 과거 환상에 매달린 채 몰락을 자초하고 있으며, 미래는 “만다린어와 루피, 루블, 금으로 담보된 계약이 지배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의 연설은 글로벌 사우스가 오랫동안 속삭여온 말을 대변했다. “우리는 너 없이도 교역하고, 건설하며, 번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