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의 땅에서 또다시 아픈 역사가 소환됐다. 다큐멘터리 영화 <아리아리 춤길> 제작팀이 찾은 곳은 남사할린의 미즈호 마을. 1945년 8월 20일부터 26일까지, 이곳에서 일본인 주민들에 의해 부녀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조선인 27명이 학살됐다. 사건 11개월 뒤 이뤄진 사체 발굴에서는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고, 유해는 수습되지 못한 채 다시 묻혔다. 그로부터 80년이 흘렀다.
올해 6월 사할린한인협회와 러시아 민간단체가 묘지와 유해를 찾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지만, 지형과 물줄기 변화로 난관에 부딪혔다. 유해 발굴은 오는 10월 재개될 예정이다. 일본 야마구치현 죠세이탄광의 사례처럼 시간이 갈수록 흔적은 희미해진다. 제작진은 한국 정부 역시 더 늦기 전에 적극적으로 유해 발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화는 재일조선인 3세 무용가 김묘수를 중심으로, 중국·러시아·카자흐스탄에서 활동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여성 무용가들의 프로젝트 무용단 ‘아리아리 춤길’의 기록을 담는다. 이들은 식민과 분단, 혐오와 차별의 상처를 춤으로 치유하며, 디아스포라로 살아온 역사와 정체성을 무대 위에 세운다. 영화는 이들의 여정을 따라 일본, 중국, 카자흐스탄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사할린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리아리’는 고(故) 백기완 통일운동가가 말한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 간다”는 뜻을 품고 있다. 제작진은 춤과 기억, 그리고 연대로 길을 잇는 이 작업을 통해 관객에게 묻는다.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