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2월, 남북한은 두 개의 중대 합의에 서명하며 한반도 정전체제 이후 가장 포괄적이고도 구체적인 평화공존의 틀을 마련했다. 바로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다. 이 두 문건은 이후 30여 년 동안 남북관계의 ‘헌법’이자 ‘규범’으로 자리매김했지만, 결국 선언에 그친 약속의 반복과 북핵 문제의 악화 속에 역사적 실험의 한계 또한 드러냈다.
상호불가침·화해협력 약속한 기본합의서
1991년 12월 13일 체결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는 양측이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무력 사용을 포기하며, 정치·군사·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사실상 최초의 남북 간 준헌법적 합의문으로, 남과 북이 “나라와 나라 사이가 아닌 민족 내부의 관계”임을 명시하며 상호관계의 법적·정치적 성격을 규정한 점이 특징이다.
합의서 이행을 위해 남북공동위원회를 설치하고, 군사당국자 간 직통전화 개설, 불가침 경계선 설정, 교류협력 실천 등이 명시됐지만, 이행은 더뎠고 군사적 충돌은 계속됐다. 1992년 1월 발효 이후에도 NLL을 둘러싼 충돌, 금강산 관광객 피살, 천안함 사건 등에서 확인되듯 상호불신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핵 없는 한반도 약속한 비핵화 공동선언
같은 해 12월 31일 서명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은 북한이 처음으로 ‘비핵화’를 공식 문서로 수용한 역사적 사건이다. 남북은 핵무기를 보유하거나 생산, 사용하지 않으며, 핵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상호 사찰 체계 또한 논의됐으나, 실질적 이행은 실패했다.
북한은 곧이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거부하고 핵개발을 가속화했다. 2006년 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총 6차례의 핵실험이 이어졌고, 2017년에는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비핵화 공동선언은 사실상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2007년 6자회담 합의, 2018년 판문점·평양 공동선언 등으로 그 내용을 넘겨받으며 법적 효력을 상실해 갔다.
‘1991년 체제’의 의미와 한계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은 남북관계의 최소한의 기준점이자, 이후 모든 정상회담과 합의의 출발점이 됐다. 특히 2000년 6·15 공동선언, 2007년 10·4 선언,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등은 모두 1991년 체제를 계승하거나 참조하는 형식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제도적 신뢰 구축 실패와 국제정세 변화 속에서 ‘1991년 체제’는 점차 실효성을 잃었다. 북한은 2013년 ‘비핵화 공동선언은 무효’라고 선언했고, 2023년 11월에는 최고인민회의에서 남북 간 모든 합의를 전면 폐기한다고 결정했다.
남북관계의 새 기준점 필요한 시점
2025년 현재, 한반도는 다시 냉전적 대결 국면으로 회귀하고 있다. 북핵은 고도화됐고, 남북 연락선은 끊겼으며, 군사적 긴장 완화 장치는 사실상 무력화됐다. ‘1991년 체제’는 역사 속으로 퇴장하고 있지만, 그 정신과 구조가 오늘날에도 유효한지를 되묻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정치적 선언이 아닌 실천 가능한 이행 장치, 상호 검증 가능한 안전보장 체계를 구축하지 않는 한, 어떤 선언도 반복된 실패의 운명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