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국방비 증액 압박을 본격화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3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릴라 대화에서 “나토(NATO) 회원국은 GDP(국내총생산)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겠다고 약속했다”며 “북한 위협을 직접 받는 아시아 주요 동맹국인 한국이 유럽보다 적은 국방비를 쓰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나토급 국방비 부담을 노골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 국방비는 GDP 대비 약 2.8%(약 66조 원) 수준이다. 이를 미국 요구에 맞춰 GDP의 5%로 올리면 연간 약 120조 원으로 급증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한국 정부의 재정 운용에 상당한 압박이 가해질 전망이다.
미국의 압박은 국방비 증액뿐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문제와 연계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2만8,500명 수준인 주한미군 주둔 비용과 전략적 유연성을 담보로 미국산 무기 구매 압박을 더해 한국의 부담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국방비 증액을 거부할 경우 경제적 압박 카드인 관세 문제와 주한미군 주둔비용 재협상까지 거론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미국이 요구하는 GDP 대비 5%라는 수치를 무조건 수용하기보다는 현실적 목표인 3.5% 수준에서 협의점을 찾고, 북핵 위협에 대응한 확장억제 전략 강화 등 명확한 반대급부를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샹그릴라 대화에서 미국 측에 주한미군의 현 수준 유지와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강조하면서도, 협상 과정에서 국익을 우선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국의 압박 속에서도 한반도의 안보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국익에 맞는 선에서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