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오는 5월 9일 제2차 세계대전 승리 80주년을 맞아 열리는 전승절 열병식에 20여 개국 정상들이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함께 붉은광장을 찾을 주요 귀빈 중에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름도 거론되며 북중러 정상 간 회동 성사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5일(현지시간) 타스 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20명 이상의 국가와 정부 정상이 전승절을 축하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와 이 중요한 날을 함께 기념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나치 독일에 대한 소련의 승리를 기념하며 매년 대규모 열병식을 열고 있다. 특히 올해는 ‘대조국전쟁 승리 80주년’이라는 점에서 러시아가 예년보다 더 큰 상징성과 외교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신(新)나치즘에 대한 투쟁’으로 규정하고 있어 이번 전승절을 정당성 홍보의 장으로 활용할 전망이다.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을 지지해온 대표적인 국가로, 김정은 위원장의 참석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푸틴 대통령의 초청을 받은 바 있으며, 이번 전승절이 방러 시점으로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김 위원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할 가능성을 보도하면서, 그럴 경우 푸틴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북중러 정상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고 전했다. 이는 서방 세계에 대항하는 ‘반미 연대’의 상징적 장면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다자 외교 경험 부족, 존재감 부각을 선호하는 외교 스타일, 시진핑 주석의 주연급 등장 등은 변수로 지목된다. 시 주석은 전승절의 ‘주요 손님’으로 예고돼 있으며, 중국의 대북·대러 외교 균형 전략에 따라 김 위원장과의 공동 참석을 꺼릴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반면,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이 북중러 회동을 통해 미국에 경고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번 전승절에는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타지키스탄 등 옛 소련 국가를 포함해 브라질 룰라 대통령, 베트남 응우옌 푸 쫑 서기장, 아르메니아 파시냔 총리 등이 참석을 예고했다. 친러 성향의 유럽 지도자들도 일부 참석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유럽연합(EU)은 모스크바 열병식 참석을 경계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후보국들의 참석이 부적절하다고 경고한 가운데,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를 “가혹한 간섭”이라고 비판하며 유럽 각국의 자율적 판단을 강조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참석 여부는 북중러 3각 외교의 향방과 대미 메시지의 강도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