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의 ‘전후체계 탈피(戦後体制からの脱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일본의 정치·경제·안보 시스템에서 벗어나, 보다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국가 체제를 확립하려는 움직임을 의미한다. 이는 주로 보수 정치 세력, 특히 자민당 내부에서 강조되어 온 개념으로, 일본이 전후 미국에 의해 형성된 패전국적 질서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정치적·경제적·외교적 시도를 포함한다.
전후체계란 무엇인가?
전후체계란 1945년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 미국 주도의 점령 정책과 국제 질서 속에서 형성된 일본의 국가 운영 방식을 뜻한다. 이 체계의 핵심 요소는 다음과 같다.
- 평화헌법(특히 제9조)
- 일본 헌법 제9조는 일본이 전쟁을 포기하고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조항은 미국이 주도한 일본 헌법(1947년 시행)의 핵심으로, 이후 일본의 안보정책을 크게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 미일 안보체제
- 1951년 체결된 미일안보조약(San Francisco Peace Treaty and US-Japan Security Treaty)으로 인해 일본은 사실상 미국의 안보 보호 하에 놓였다. 이를 통해 일본은 자위대 창설(1954년) 이후에도 군사적 자율성을 갖지 못했고, 주일미군의 주둔이 계속됐다.
- 경제우선 정책
- 전후 일본은 안보 문제를 미국에 의존하는 대신 경제 성장에 집중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이는 1950년대 이후 일본이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독립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한계를 초래했다.
- 전후 역사인식과 교육
- 일본은 패전 이후 전쟁 범죄에 대한 책임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동시에 전쟁 책임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두고 내부적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논란 등을 지속적으로 불러왔다.
전후체계 탈피의 주요 동향
전후체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1990년대 이후 점점 강화되었으며,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핵심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정책들이 시도되었다.
- 헌법 개정 추진
- 일본 보수 세력은 헌법 9조 개정을 통해 일본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정상국가’ 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아베 정권에서는 ‘자위대의 명기(明記)’라는 형태로 개헌 시도가 이루어졌으나, 국민적 반대와 정치적 장애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다.
- 안보 정책 변화
- 2015년에는 ‘안보 관련 법제(安全保障関連法)’를 통해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는 일본이 단순한 방위 개념을 넘어 동맹국과의 공동 군사 작전에 참여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다진 것이다.
- 경제 및 외교 자립 시도
- 일본은 경제적으로도 중국과의 경쟁, 미국과의 협력 속에서 보다 독립적인 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제안보법’을 통해 기술 및 자원 확보에서의 자립을 강조하고 있으며,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미·일 동맹 중심의 외교에서 벗어나 다양한 국가들과 협력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 역사 인식 변화 시도
- 일부 보수 세력은 ‘전후 체제’가 일본을 패전국으로서의 죄의식 속에 가두고 있으며, 이를 벗어나기 위해 역사 인식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나 역사교과서 개정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전후체계 탈피의 쟁점과 전망
전후체계 탈피는 일본 내부에서도 강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 찬성 측은 일본이 이제 독립적인 국가로서 헌법 개정과 군사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일본이 보다 주체적인 외교·안보 전략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 반대 측은 일본이 전후 평화주의 노선을 유지해야 하며, 헌법 개정이나 군사력 증강은 동아시아의 긴장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