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중 국군이 중공군을 상대로 거둔 대표적인 승전으로 평가받는 파로호 전투가 올해로 75주년을 맞는다. 파로호 전투는 1951년 5월 강원도 화천 일대에서 벌어졌으며, 국군의 전투 역량과 반격 능력을 입증한 상징적인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전투는 1951년 5월 26일부터 28일까지 화천저수지 일대에서 전개됐다. 당시 유엔군은 중공군의 춘계공세를 저지한 뒤 반격 작전에 돌입했고, 국군 제6사단은 후퇴하는 중공군의 퇴로를 차단하는 임무를 맡았다.
국군은 화천저수지 주변의 주요 고지를 확보하며 중공군을 압박했다. 퇴로가 막힌 중공군은 조직적인 철수가 어려워졌고, 상당수 병력이 전사하거나 포로로 붙잡혔다. 일부 병력은 저수지를 건너 탈출을 시도하다 수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파로호 전투는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좌절시키고 전선의 주도권을 유엔군 측으로 되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국군 제6사단은 기동력과 공격력을 바탕으로 전과를 올리며 한국군 전투사에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전투 이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화천저수지에 ‘오랑캐를 무찔렀다’는 뜻의 ‘파로호(破虜湖)’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이후 파로호는 한국전쟁 승전의 상징적 장소로 자리 잡았으며, 현재도 전적비와 기념시설을 통해 당시의 역사를 전하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파로호 전투를 용문산 전투와 함께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주도적으로 승리를 거둔 대표적 사례로 평가한다. 또한 국군의 작전 수행 능력과 전투 의지를 국제사회에 입증한 전환점 가운데 하나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국가보훈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매년 전투 희생자와 참전 장병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한 추모 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파로호 전투의 역사적 가치를 미래 세대에 알리기 위한 교육과 기념사업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