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헌법 개정을 통해 처음으로 영토조항을 신설하고 국무위원장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기존 대남 통일 노선이 삭제된 반면, 명시적 ‘적대국’ 표현 역시 포함되지 않아 향후 남북관계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예상된다.
새로 신설된 헌법 제2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령역은 북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있는 령토와 그에 기초하여 설정된 령해와 령공을 포함한다”고 규정했다. 이어 “령역에 대한 그 어떤 침해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북한 헌정사에서 영토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조항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 헌법은 영토 범위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았다.
이번 개정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부터 제시한 ‘두 국가론’ 기조와 맞물린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개정 헌법에서 기존 제9조에 포함됐던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 실현” 문구를 삭제했다. 이는 남북을 하나의 민족공동체로 규정했던 기존 통일 노선을 사실상 폐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개정 헌법 전반에서는 예상과 달리 ‘대한민국’을 적대국으로 규정하거나 ‘괴뢰’, ‘적대국가’ 등의 표현은 등장하지 않았다.
6일 통일부 출입기자들과 만난 이정철 교수는 “이번 헌법 개정에서 국가성을 강조하는 표현들이 추가됐지만 ‘적대적’이라는 형용사와 관련된 표현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남북 평화공존으로 가는 하나의 인프라가 마련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북한이 ‘두 국가론’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남북 평화공존의 여지를 남겨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개정 헌법은 2023년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회의 당시 ‘사회주의 헌법’과 비교해 전체 조문 수가 172조에서 168조로 줄었다. 또 헌법 명칭과 서문, 본문 전반에서 ‘사회주의’ 표현이 대폭 축소된 점도 특징으로 꼽힌다.
기존 헌법에 있던 ‘사회주의 자립적 민족경제노선’은 ‘자립적 민족경제노선’으로 바뀌었고, ‘사회주의 법무생활’, ‘사회주의 법무제도’ 역시 각각 ‘법무생활’, ‘법무제도’로 수정됐다.
서문도 대폭 간소화됐다. 과거 헌법이 “김일성-김정일헌법”이라는 표현을 통해 김일성·김정일 업적을 장황하게 서술했던 것과 달리, 개정 헌법은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국가건설과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지침”이라고만 규정했다.
대신 김정은 시대 핵심 정치구호인 ‘인민대중제일주의’를 “국가건설과 활동의 근본원칙”으로 명문화했고, 대외정책 기본 이념으로는 ‘자주·평화·친선’과 함께 ‘국익수호’를 추가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국무위원장 권한 강화다.
개정 헌법은 제6장 국가기구 편제에서 국무위원장을 최고인민회의보다 앞선 제1절에 배치했다. 또 제86조에서 국무위원장을 기존 ‘최고령도자’ 대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대표하는 국가수반”으로 규정했다.
특히 제89조에서는 “핵무력에 대한 지휘권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에게 있다”고 명시해 핵사용 권한을 헌법에 처음으로 반영했다. 국무위원장이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핵무력 사용 권한을 위임할 수 있다는 조항도 새로 포함됐다.
기존 헌법상 존재했던 최고인민회의의 국무위원장 소환 조항은 삭제됐다. 반면 최고인민회의 의장, 내각 총리 등 국가 주요 간부에 대한 국무위원장의 임면권은 새롭게 명문화됐다.
개정 헌법은 또 국무위원장에게 최고인민회의 및 상임위원회 법령에 대한 사실상 거부권을 부여했다. 제90조는 “국가의 발전과 인민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을 경우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7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북한 헌법 개정 동향과 관련된 사항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정부는 이를 토대로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