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이 지난 4월 30일 별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향년 90대 중반. 그는 뛰어난 연주자이자 교육자로 활동했을 뿐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전선에서 음악으로 병사들을 위로한 인물로 기억된다.
번스타인은 1951년, 23세의 나이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당시 1·4 후퇴 직후 전황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그는 최전방 부대에 배치됐다. 총성이 오가는 전장 한복판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피아노였다. 병사들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고, 그가 자주 연주한 곡은 프란츠 리스트의 작품 ‘Consolation No.3’였다. 잔잔한 선율은 극도의 긴장과 공포 속에 있던 장병들의 감정을 건드렸고,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공연 도중에도 전투가 벌어질 수 있었던 만큼 피아노 옆에는 늘 소총이 놓여 있었다. 그는 생과 사가 교차하는 현장의 경험을 일기로 남겼지만, 전쟁 이후 오랜 기간 이를 꺼내지 못했다. 자신이 연주하던 자리에서 함께 있던 전우들이 잇따라 전사한 기억이 담긴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배우 에단 호크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번스타인은 20년 넘게 외면했던 전쟁 당시의 일기를 다시 펼치며 자신의 경험을 공개했고, 영화에는 한국전쟁에서의 기억과 음악에 대한 철학이 담겼다.
그의 한국과의 인연은 전쟁 이후에도 이어졌다. 1960년 연주를 위해 방한했다가 4·19 혁명을 직접 목격했고, 시위 과정에서 부상당한 학생들과 가족들을 위해 병원을 찾아 연주를 이어갔다. 이후에도 한국과의 교류를 지속했으며, 2016년에는 보훈처 초청으로 다시 한국을 찾아 공연을 열기도 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온라인 연주회를 통해 한국 관객과 소통했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음악의 역할을 몸소 보여준 그의 삶은, 예술이 인간에게 어떤 위안을 줄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