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반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는 노선을 공식화하면서 재일본 조선인 사회에도 직격탄이 떨어지고 있다. 일본 내 친북 조직인 조총련은 사실상 아무 역할도 수행하지 못하는 구조로 내몰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남조선을 더 이상 같은 민족으로 보지 않고 별도의 국가, 별도의 민족으로 규정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한국민족과 조선민족이 완전히 분리된 채 대치하는 ‘2민족 2국가’ 구도다. 이 같은 노선 변화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체제 유지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우선 내부 결속을 위한 선택으로 분석된다. 남북 간 경제력 격차가 이미 25배 수준까지 벌어졌다는 사실은 북한 주민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상황이다. 같은 민족이라는 인식이 유지될 경우 체제 실패에 대한 의문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남한을 완전히 다른 국가, 다른 민족으로 규정함으로써 주민들의 기대와 동경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한 영상물을 시청했다는 이유만으로 중형이 선고되는 등 통제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대남 인식 변화에는 정치적 계산도 작용했다. 과거 진보 정권 시기에도 기대만큼의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고, 유엔 제재와 미국 변수에 막혀 실질적 지원이 제한됐다는 판단이다. 이후 보수 정권 출범으로 대북 지원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지자, 아예 기대 자체를 접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같은 기조 변화는 재일 조선인 사회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총련은 북한과의 연결고리를 기반으로 존재해왔지만, ‘민족 공동체’라는 명분이 약화되면서 활동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민단 역시 남북 관계를 전제로 한 교류나 역할 설정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북한의 입장이 명확해진 상황에서 양측 모두 협력이나 중재의 공간이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결국 일본 내 한민족 단체들은 서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민족적 연대 자체가 부정되면서, 재외 조직 역시 방향성을 잃고 위기 국면에 진입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이번 노선이 장기 전략이라는 데 의견이 모인다.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북한 지도부가 언어는 유사하지만 문화와 정체성이 다른 두 민족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체제 통치를 장기화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박노자 역시 남북 간 ‘영구적 분리’ 선언 배경에 과거 관계에서의 경험과 국제 정세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한반도에서 민족 개념 자체가 재정의되는 상황 속에서, 재일 조선인 사회는 물론 남북 관계 전반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