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켄터베리의 켄트대학교(University of Kent)에서 북한 인권을 주제로 한 강연이 열렸다. 북한 출신 인권 활동가로 소개된 티모시 조(Timothy Cho)는 탈북 과정과 구금·수감 경험, 그리고 기독교 신앙으로의 전환을 중심으로 북한 체제의 폭력성과 종교 박해 실태를 설명했다. 영국에 체류 중인 NKNGO Forum 대표 송원서도 현장에 참석했다.
티모시 조는 북한을 “세계 최악의 인권 침해 국가”로 규정하며, 유엔 결의·조사 보고서 등 국제사회의 문제 제기가 장기간 이어져 왔다고 언급했다. 또한 민간 보고서로 알려진 ‘World Watch List’를 인용해 북한이 기독교 박해 위험이 가장 높은 국가로 분류돼 왔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사회를 “입은 닫히고, 눈은 가려지고, 귀는 막힌 나라”라고 표현하며 정보 차단을 핵심 통치 수단으로 지목했다. 인터넷·외부 뉴스 접근이 봉쇄된 상황에서 주민들이 접할 수 있는 외부 정보는 국경 지역을 통한 비공식 유입 등에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동의 자유 제한도 강조했다. 도시 간 이동에 허가증이 필요하며, 일상적인 이동 자체가 국가의 통제 아래 놓인다고 말했다.
강연에서는 우상화 체제와 공포 통치에 관한 사례도 제시됐다. 티모시 조는 “화재 시 주민들이 사람보다 지도자 초상화를 먼저 구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을 언급하며, 이를 통해 체제가 개인의 생명보다 충성을 우선하도록 강요한다고 주장했다. 외국 영상물 시청 등 ‘사소한 행위’로도 중형이 선고되는 사례를 거론하며, 특히 청소년 세대가 강한 통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 증언에서는 삶의 급격한 변화가 핵심으로 다뤄졌다. 그는 교사 가정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9~10세 무렵 부모가 사라지면서 거리 생활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17세에 탈북을 결심한 배경으로는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갈 수 있다는 공포”를 들었다. 탈북 후 중국으로 넘어가며 처음 목격한 ‘개인의 선택’—사람들이 각자 다른 옷과 신발을 고르는 풍경—이 북한의 획일성과 극명하게 대비됐다고도 전했다.
티모시 조는 탈북 이후에도 체포·구금이 반복됐고, 17세 무렵에는 강제 송환과 수감 과정에서 공개처형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구금시설에서의 경험을 언급하며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렸고, 다수의 수감자가 한 공간에 밀집된 채 조사와 폭력에 노출됐다”고 말했다.
강연의 상당 부분은 신앙 전환에 할애됐다. 그는 탈북 이후 국경 지대에서 기독교 선교사를 만나 작은 성경을 접한 것이 첫 계기였다고 했다. 이후 중국 수감 중 만난 한국인 목회자의 기도를 보며 처음으로 기도를 시작했고, “하나님을 몰랐지만 ‘여기 있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으로 기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도 과정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평안과 ‘따뜻함’을 경험했다고 주장하며, 출소 후에는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남겼다는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는 문장이 자신을 바꾼 결정적 계기였다고 밝혔다. 결국 세례를 받으며 삶의 방향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역사적 인물들을 언급하며 행동을 촉구했다. 노예제 폐지 운동가 윌버포스, 나치에 맞섰던 본회퍼 등을 거론하며 “악 앞의 침묵” 문제를 제기했고, 핵심 메시지로 “사랑을 먼저 선택하라”는 문장을 반복했다.
강연 종료 후에는 30분 이상 학생들과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북한 인권의 실태, 국제사회의 대응, 신앙과 인권운동의 관계 등을 묻는 질문이 잇따랐고, 현장은 끝까지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참석자들은 강연 내용이 충격적이었고, 놀라움의 연속이었으며, 강연이 남긴 영향도 컸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