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일본 헌정 사상 최장기 재임 기록을 세운 정치인이자, 전후 일본 정치질서를 전면적으로 흔든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요시다 시게루로 대표되는 전후 보수주의의 기본 노선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며, 일본을 ‘정상국가’로 탈바꿈시키려는 야심을 품었다.
전후 일본의 정치 질서는 요시다 노선으로 대변되는 ‘비군사화, 경제성장, 미일동맹 중심의 외교안보’로 구성돼 있었다. 그러나 아베는 이와 결별하며 헌법 개정과 안보법제 강화, 자위대의 위상 제고를 일관되게 추진했다. 이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아베의 정책 기조는 경제 분야에서도 실용주의적 접근을 보였다. ‘아베노믹스’는 디플레이션 탈피와 구조 개혁, 성장 전략을 목표로 한 3대 화살 전략으로, 일본 경제를 재활성화하려는 시도였다. 비록 일관성과 실효성 면에서 비판도 있었지만, 정치적 메시지 전달에는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교 분야에서는 미일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중국 견제에 중심을 둔 인도·태평양 전략을 주도했다. 또한, 한국과의 역사 갈등을 외교 문제로 적극 제기하며 보수 민족주의 노선을 강화했다. 이 같은 행보는 일본 내 우익 보수층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으나, 한일 관계에 장기적 불신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함께 존재한다.
결국 아베는 ‘전후 체제의 탈피’라는 대담한 목표를 정치 현장에 끌어온 인물이었다. 그는 헌법 9조 개정을 현실화하진 못했지만, 개헌 가능성을 주류 정치 의제로 끌어올렸고, 일본 정치의 우경화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상징적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정치적 찬반을 떠나 아베 신조는 전후 일본을 규정해온 보수주의의 틀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일본 정치의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껴안으려 했으며, 그 시도 자체가 전후 정치사에서 중요한 전환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