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과거 한반도에서 두 국가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사실이 공개된 남북회담 회의록을 통해 확인됐다. 과거 북한은 남북 대화에서 국가 명칭 사용을 회피하며 통일 의지를 강조한 반면,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어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통일부는 13일 남북대화 사료집 12권과 회의록편 2권을 공개했다. 해당 문서에는 1989년 11월 15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 제4차 예비회담 내용이 포함됐다. 당시 북한 측은 회담 명칭을 국가 간 회담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는 ‘총리회담’ 대신 ‘고위급 회담’을 주장했다.
백남준 북한 정무원 참사는 “회담 명칭을 정함에 있어서 분열된 나라를 통일하려는 겨레의 염원이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며, “‘고위당국자회담’ 또는 ‘총리회담’이라는 명칭은 통일 의지를 반영하지 못하며, 국가 간 회담이라는 인상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고위급정치군사회담’이라는 명칭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우리 측 송한호 국토통일원 차관은 “남북 간 회담이 정치·군사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 폭넓은 사안을 다뤄야 한다”며 반박했다.
이뿐만 아니라 북한은 1985년 11월 20일 열린 제5차 남북경제회담에서도 합의서 서명 시 남북 국호를 사용하지 말 것을 고수했다. 당시 북한 노동신문은 “남측이 북과 남의 경제관계를 논의하면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배제하려 했으며, 국호를 밝히지 않는 데 대한 우리의 주장을 협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남북 경제협력은 같은 민족 간 교류이므로 서명란에 국호를 표기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2023년 12월 3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이며, 전쟁 중인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선언했다. 이는 북한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통일 지향적’ 입장을 철회하고, 남북을 별개의 국가로 규정하는 정책 변화로 해석된다.
과거 북한이 한반도 단일국가 원칙을 강조했던 것과 비교할 때,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남북 관계의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남북 간 협력과 대화의 여지가 줄어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