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 회의를 개최해 ‘사회주의헌법 일부 내용 수정 보충’ 의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당시 공론화한 이른바 ‘두 개의 국가’를 핵심으로 한 대남정책 전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대남정책 전환이 헌법 개정에 포함되었으나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해 “상황을 보면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점이 주목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가 열린 김정은국방종합대학 창립 60주년 경축행사에 참석해 “이전 시기에는 남녘 해방이나 무력통일을 언급했지만 지금은 전혀 관심이 없으며, 두 개 국가를 선언한 이후 더 이상 남한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최고인민회의에서 법적으로 규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 나온다.
영토 조항 개정 여부
이번 헌법 개정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영토 조항 변경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경을 설정하는 문제는 단순한 선언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주변 국가들의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군사분계선을 국경으로 설정할 경우,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LL)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힐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또한, “우리 헌법에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는 표현이 애매한 것처럼, 북한도 애매하게 규정할 가능성이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국경선 설정이 이번 회의에서 다뤄지지 않았으며, 향후 내부적으로 연구와 고민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두 개의 국가와 두 개의 민족?
북한이 공식적으로 두 개 국가를 선언했지만, 두 개의 민족으로 규정하지는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과 북을 완전히 분리된 민족으로 선언할 경우, 해외 동포들의 지위 문제 등이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총련과 민단 동포들에 대한 처리가 난제가 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관계를 두 국가로 규정하면서도 민족 개념을 삭제하거나 통일 개념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의 입장은 여전히 모호한 측면이 있다.
북한의 정책 변화 배경
북한의 대남정책 전환은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 북미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은 “협상을 통한 평화가 아닌,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했다”고 해석된다. 미국과의 협상보다는 자체적인 군사력을 강화해 미국을 제압하는 전략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정세의 변화도 북한의 입장에 영향을 미쳤다. 북한은 현재 국제질서를 ‘신냉전’으로 규정하고, 중국, 러시아, 이란 등 반미 진영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러 밀착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또한, 북한 내 세대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북한의 젊은 세대는 과거처럼 통일 문제에 대한 집착이 크지 않으며, 개혁과 개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 주변의 젊은 엘리트들이 북한의 개혁 개방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
새로운 통일운동 패러다임 필요
북한의 두 개 국가론이 박정희 정권의 ‘선(先) 건설론’과 유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북한과의 정상회담 제안을 거부하며 “아직 때가 아니다”라고 한 것처럼, 북한 역시 현재는 경제 건설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측이 발신하는 메시지는 “우리 길을 가겠다. 우리를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경제가 근본적으로 후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한 담론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할 만하다.
현재 남과 북이 상대방을 향해 전면적인 전쟁을 시도할 가능성은 낮지만, 우발적 충돌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당장의 평화를 중심으로 한반도의 두 개 국가와 평화적 공존을 공통점으로 삼아 새로운 통일 운동의 패러다임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북한이 통일을 먼 미래의 일로 간주한다고 해서 남한도 같은 입장을 취할 필요는 없으며, 평화적 교류를 통해 점진적인 통일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