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 소해금 연주가 량성희의 4월 내한 일정이 개인의 가족사와 한반도 현대사를 관통하는 ‘서사’로 이어졌다. 음악 활동을 넘어 정체성, 귀향, 그리고 평화와 통일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행보였다.
량성희는 재일 제주인으로서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는 계기를 맞았다. 강제징용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조부를 기준으로 85년 만, 제주4·3사건을 기준으로는 78년 만의 고향 방문이었다. 고향은 제주도 제주시 이호리.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조국은 조선, 고향은 한국”으로 불려온 이중적 정체성 속에서도 제주라는 공간은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곳이었다.
그가 4·3 유가족임을 인지한 시점은 2025년 12월이다. 가족을 통해 관련 사실을 확인한 이후 2026년 2월 추념식 참석이 확정되면서 비로소 구체적인 가족사를 접했다. 제주 방문 기간 중 제주4·3평화공원 위령관에서 증조부와 외증조부의 위패를 처음 확인했다. 이어 사건 기록 열람과 선산 참배가 이어졌고, 가족들은 세대를 건너 이어진 비극과 마주했다.
확인된 가족사는 비극적이다. 1949년 이호리 일대 토벌 과정에서 증조부는 총살됐고, 어린 고모할머니 역시 희생됐다. 외가 역시 피신 생활 중 기아와 추위, 토벌 작전으로 가족 구성원 다수가 목숨을 잃었다. 이는 제주4·3사건이 개인과 가족 단위에 남긴 상흔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후 가족은 일본으로 건너가 삶을 이어갔다. 조부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홋카이도 탄광에 동원됐고, 해방 이후에도 귀향하지 못한 채 오사카에 정착했다. 노동 후유증으로 이른 나이에 사망했고, 가족은 생계와 차별 속에서 살아야 했다. 재일조선인으로서 겪은 사회적 배제와 혐오 역시 일상이었다.
량성희는 조선학교 교육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했다. 분단 상황 속에서 민족어와 문화를 유지하는 공간이었던 조선학교는 재일동포 사회에서 ‘정신적 고향’으로 기능해왔다.
이번 내한 기간 동안 그는 공연과 강연을 통해 자신의 음악 세계를 선보였다. 4월 11일에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여주협의회 초청으로 ‘조선 클래식’을 주제로 한 렉처 콘서트를 진행했다. 생소한 악기인 소해금 연주와 혁명가극 곡 해석으로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4월 16일에는 시민단체 초청으로 통일과 평화를 주제로 한 특별 공연을 열었다. 전문 공연장이 아닌 공간에서도 공연을 이어가며 메시지 전달에 방점을 찍었다. 이어 4월 20일에는 국회를 찾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의 뜻을 기리는 전시 개막식에 참석했다.
량성희의 이번 방문은 단순한 공연 일정이 아닌 ‘귀향’의 의미를 지닌다. 국적과 체제의 경계를 넘어 형성된 정체성과, 분단으로 단절된 가족사의 복원을 동시에 보여줬다. 재일 1세대가 품어온 귀향의 염원을 다음 세대가 현실로 이어냈다는 점에서도 상징성이 크다.
그는 조선학교 출신 연주자로서 전통 음악을 기반으로 한 ‘조선 클래식’을 이어가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번 내한은 개인의 역사와 집단의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문화가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다시 환기시켰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