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 연주자 량성희(37)가 서울에서 첫 독주회를 연다. 앨범 ‘꽃이 피다’ 수록곡 ‘울지 말아 을남아’에서 들려준 애조와 기교는 이번 무대의 방향을 예고한다. 조선 클래식의 원곡과 서양 클래식, 창작곡을 한 무대에서 엮어 남북 음악 교류의 실마리를 모색한다는 취지다.
량성희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조선학교에서 우리말·우리음악을 배웠고, 10대 때 평양음악대학 ‘통신수강제도’를 통해 한남용의 지도를 받았다. 북한 최고의 소해금 연주자로 꼽히는 신률과도 사제 인연을 맺었다. 2007년 금강산가극단에 입단해 민족관현악단 악장을 지냈고, 일본 순회공연과 도쿄시티필하모닉과의 협연 등으로 활동폭을 넓혔다. 2016년에는 북한의 권위 있는 경연인 ‘2·16예술상’에서 수상했다.
그의 정체성은 ‘조선’에 꿰어 있다. 가족은 제주 출신 재일동포 1·2세대로, 집 안에서는 민요와 한복, 명절 음식이 생활의 일부였다. 량성희는 일본식 통칭을 쓰지 않는다. “소해금은 우아하고 부드럽고, 감정의 결이 깃든 소리”라는 정의처럼, 그는 이 악기를 삶의 언어로 삼았다. 서양 현악의 문법과 민요적 장식, 미분음 처리가 뒤섞인 소해금 고유의 발성은 서울 녹음 현장에서도 낯설었지만, 그는 “민족성을 바탕으로 서양악보를 읽는 악기”라는 설명으로 설득을 택했다. 기술적 완성도는 서울 녹음실이, 음악적 리더십은 자신이 채웠다는 회고다.
조선 클래식은 1960년대 북한에서 개량·정착한 민족관현악 체계 위에서 자라났다. 소해금은 바이올린을 모델로 했지만 음색은 더 거문고처럼 낮게 울리고, 선율은 노랫말을 품듯 활로 꿰맨다. 량성희가 이번 무대에서 꺼내는 레퍼토리는 이 정체성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울지 말아 을남아’(혁명가극 ‘피바다’ 중), ‘리별의 시각은 다가 오는데’(‘꽃 파는 처녀’ 중), ‘사향가’를 1부에 올려 조선 클래식의 선율과 정서를 소개하고, 2부에는 포레 ‘꿈을 꾼 후에’, 크라이슬러 ‘사랑의 슬픔’, 알비노니 ‘아다지오 g장조’로 세계 레퍼토리와의 호흡을 시험한다. 창작곡 ‘연꽃’과 디지털 앨범 타이틀 ‘내 사랑하는 꽃’ ‘봄맞이’ ‘종다리’ 등도 포함됐다. 앵콜은 여순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작곡된 ‘라그리마’다. 제주 4·3의 기억까지 포괄하는 추모의 맥락을 무대 위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다.
정치적 프레임에 갇히는 시선을 향해 그는 “재일조선인은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총련 공동체의 기대와 현실, 해외 활동을 위한 제약 사이에서 그는 한국 활동과 세계 무대 진출을 택했다. 국내 데뷔를 마치면 일본에서 정식 음반을 내고 그래미 월드음악 부문 도전, 유럽 데뷔, 소해금 입문 교본 집필을 잇따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현장 제작을 맡은 하나아트컴퍼니 이철주는 “작은 편성, 가까운 객석, 선명한 사운드로 소해금의 ‘직접성’을 체험할 무대”라고 설명했다.
공연 정보는 다음과 같다. 일시는 11월 25·26일 오후 7시 30분, 장소는 서울 마포 토마토홀. 공연 실황은 이후 유튜브 채널 ‘토마토클래식’에서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