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요원 유출’ 간첩죄 처벌이 안되는 대한민국 ‘주적=북한’ 이라는 인식문제
군사기밀누설 사건과 간첩죄 적용의 문제점
지난 7월 30일, 군사기밀누설 등의 혐의로 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 ㄱ씨가 구속되었다. ㄱ씨는 외국에서 신분을 위장하고 첩보활동을 하는 정보사 요원의 신상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군 수사기관은 ㄱ씨의 개인 노트북에서 중국 동포에게 기밀이 유출된 정황을 포착했다. 그러나, 수사 결과 ㄱ씨가 중국 동포에게 기밀을 유출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도 중국은 ‘적국’이 아니어서 간첩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 형법상 간첩죄는 국가기밀을 ‘적국’(북한)에 넘겼을 때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김아무개 대위 사건과 법원의 판단
지난 2022년 4월, 특수전사령부 소속 김아무개 대위가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군사기밀을 넘기고 5천만원어치 가상화폐를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김 대위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1·2심 법원은 김 대위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무죄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이는 간첩죄 적용을 위해서는 기밀을 넘긴 인물이 북한 공작원임이 명확히 입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적’ 개념의 한계와 안보 정책의 방향
한국의 안보 정책은 여전히 ‘적국’ 개념에 갇혀 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주적’을 명시하거나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 우리의 적’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혀야 대적관이 분명해지고 안보가 튼튼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는 특정 국가를 적으로 공식 표현하는 경우가 드물다. 외국은 ‘위협’ 같은 흐릿한 용어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현실에 유연하게 대응한다. 적을 특정하면 전략적 운신의 폭을 스스로 좁힌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이 ‘북한=주적’으로 명시하면 국방력 건설에 스스로 족쇄를 채울 수도 있다. 국방비 중 무기관련 예산의 70%는 북한 위협에 대비하고, 30%는 중국, 일본 등 한반도 주변의 불확실한 위협에 대비하는데 사용된다. 예를 들어, 공군의 공중급유기 도입은 한반도 밖의 작전반경을 확대하기 위한 것인데, 이를 북한만을 적으로 규정하면 일본 등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